이용균<br>병원이노베이션연구소장<br>연세대 보건대학원 겸임교수&nbsp;
이용균
병원이노베이션연구소장
연세대 보건대학원 겸임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최근 의료정보의 표준화와 관련한 개인적인 에피소드이다. 한국 코이카(KOICA)는 페루의 통합건강보험과 원격의료시스템 구축을 위한 정부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사업 연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페루의 보건부차관과 건강보험청장이 내한했다. 연수 첫날 페루 건강보험청장은 한국의 건강보험시스템과 원격의료시스템 구축경험과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2차례 방문해 본 페루의 병원정보화 수준은 국내 1980~90년대 환자용 의무기록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상태이다. 따라서 전국민 통합건강보험시스템을 구축 중인 페루의 보건부와 건강보험청 입장에서는 한국을 롤-모델(role model)로 건강보험 청구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한다. 하지만 한국과 달리 페루의 건강보험청장은 건강보험 디지털화를 구축하는 초기단계부터 자국의 의료용어 표준화를 시스템에 도입하고 싶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이처럼 제3세계에서는 한국형 건강보험시스템을 전국민건강보험시스템 롤-모델로서 벤치마킹하려고 하려는 국가들이 많다. 국내에서는 건강보험제도의 도입 초기 건강보험 부담능력과 국가 재정상황을 고려하여 저부담-저수가-저급여 건강보험체계로 출발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한국의 3저 건강보험시스템은 건강보험 재정이 부족한 저개발국 및 중진국들에게 좋은 벤치마킹 모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국내 건강보험제도가 도입 당시 의료기관의 정보 표준화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국내에서 처음 의료정보시스템이 선보인 것은 그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개발한 보험료 징수관리심사지급 등 업무효율화가 중심이었다. 이후 90년대 병원의 IT인프라 환경을 기반으로 한 전자문서교환방식(EDI)이 도입되었는데, 의료보험EDI를 기반으로 한 전자심사시스템구축운영이 목표였다.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전국의료보험의 도입으로 늘어난 환자진료업무의 신속한 처리를 위해서 OCSPACSEMR이 순차적으로 병원정보시스템(HIS)에 도입되었다. 의료기관은 건강보험 진료비 청구를 위해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요구하는 청구코드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청구파일을 생성하고 건강보험 포털(portal)를 통해서 전송 하였다.

이런 의료기관과 건강보험공단간의 포털을 이용한 EDI청구방식은 의료기관들이 표준화를 통해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의료정보 데이터 활용과 생태계 조성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지난 해 정부는 빅데이터 구축 및 의료기관 간 정보교류 촉진을 위한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보건의료데이터 표준화 로드맵을 제시하였다. 복지부 주축으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산하 데이터 특별위원회를 통해서 보건의료데이터 표준화 로드맵(’21~‘25)을 발표한 것이다.

그 배경에는 의료기관 간의 의료데이터 표준화 미흡에 따른 처리 비용·시간의 낭비 해소와 임상 및 의학연구의 빅데이터 활용과 활성화가 요구되는 상황이지만 의료용어표준의 진입장벽이 있다고 인식한 것이다. 주요내용은 의료정보의 다양한 데이터 결합·활용 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표준화 대상과 범위를 정하고, 의료기관에 확산하기 위한 표준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부의 의료데이터 표준화 로드맵에는 의료용어 표준화와 국제용어표준(SNOMED-CT) 기반 매핑 가이드라인의 적용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의료계 현장에서는 정부의 의료표준화는 아직도 요원한 실정이다. 왜냐하면 대형병원의 정보시스템 표준화 도입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되고 현시점에서는 투자 대비 실익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의료계의 보건의료 데이터 표준화를 통한 의료정보 교류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전략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제안하는 대안으로는 미국처럼 IT솔류션 공급업체를 통한 표준화 드라이브 정책이다. 현재 국내 병원정보시스템 공급방식은 패키지 개발방식으로 변화되었고, 대형병원의 정보시스템 공급업체는 3개사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들 병원정보시스템 솔류션 업체에 보건의료 데이터 국제표준을 준용토록 유도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만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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