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안병정 기자]얼마 전 한 대형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고, 결국 사망한 사건으로 의료체계에 대한 온갖 지탄이 쏟아졌다. 그 뒤 필수의료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다양하게 분출하고 있다.

근본은 ‘의사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의사 수 증원이 제기되는가 하면, 낮은 수가 체계로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를 외면하는 ‘의료의 왜곡’에서 비롯된 문제이니 의료시스템을 개혁해야 된다는 목소리도 크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왜 특정 진료과나 특정분야를 기피하고 전문의가 부족한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며, 정부에 필수의료분야에 대한 ‘국가책임제’ 시행을 제안했다.

지금까지 나온 여러 주장이나 제안들은 모두 나름의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문제의 핵심인 필수의료 공백을 막을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는 일에 지혜를 모을 때다.

일각에서 의사 부족을 비중 있게 거론하고 있지만 작금의 논란, 즉 필수의료와 관련해서는 의사수 부족과는 또 다른 문제다. 논란의 중심이 되는 신경외과만 해도 인구대비 전문의 숫자로는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최상위에 속한다. 다만 신경외과전문의들 가운데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클립결찰술’을 시행하는 의사가 귀해졌을 따름인 것이다. 결국 ‘의사 수’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들 가운데 힘들고 어려운 수술을 하려는 의사가 적은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실제 외과를 중심으로 여러 필수 전문과목 의사들이 그 수는 많지만,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 개업이나 봉직 일선에서 ‘전문’을 포기하는 사례는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 됐다. 다 아는 얘기지만 어렵고 힘들게 수술이나 처치를 해봐야 합당한 보상도 받지 못하면서 자칫 의료사고라도 당하면 민형사상 책임만 떠안게 되는데 누가 쉽사리 이런 모험에 나서려 하겠는가. 결국 전공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생존을 위해 세부전공을 기피하는 형국이니 특정 분야, 특히 필수의료가 공중에 뜨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한마디로 필수의료의 위기는 관련 전문의들이 생존이 어렵고, 미래를 기대하지 못해 다른 길을 가고 있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런 선배들의 실패와 비전이 없음을 잘 아는 젊은 의사들이 관련 전공의 지원을 기피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현실이 이럴진대 막연히 의사수를 늘린다고 한들 과연 필수의료분야에 뛰어들 의사가 얼마나 될지도 미지수다.

그래서 일단 의사수 문제는 뒤로 미루고 지금은 간호사 사망사건에 집중하여, 이를 계기로 필수 의료를 새롭게 규정하고, 대응체계를 제대로 확립하는데 모든 역량을 모을 때라고 본다. 그렇다고 급한 나머지 관련 과목이나 분야의 수가를 가산하거나 전공의 수련보조수당을 좀 더 현실화 시켜주겠다는 등의 진전된 ‘인센티브’로는 또 미봉책이 되고 말 것이다. 당장의 유인책이 아니라 혐오스러우며, 힘들고 위험한, 그러면서 보상은 보잘 것 없는 소위 ‘3D 의료분야’를 제대로 보전(補塡)하여 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일에 나서야 한다. 그것은 국가 차원의 과감하고 혁신적인 투자와 지원뿐이다. 국가책임제에 버금가는 파격적인 대책이 마련되어 필수의료 관련 분야가 시장의 기능을 회복하여 서비스를 수행하게 된다면 적어도 간호사 사망사고와 같은 일은 재발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1회 투여비용이 20억원에 달하는 초고가약을 건강보험에 적용하여 환자가 600만원 이내로 부담하면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복지 국가가 되어있다. 이런 판국인데 필수의료를 등한시 한다는 것은 '건강안보' 차원에서 심각한 일이다. 국민들이 필수 의료서비스를 못 받을까봐 걱정하는 일이 없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책무를 되새겼으면 한다. 그것이 국민건강의 백년대계를 위한 길이며, 건강안보를 굳건히 다지는 길임을 강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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