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안병정 기자]내년도 수가협상 결과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협상을 타결 짓지 못한 의협은 각과 개원단체들이 나서 드센 불만을 표출하고 있고, 가까스로 타결했던 병협도 속을 부글부글 끓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내년도 수가 인상에 대해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좋던 싫던 병협은 이미 도장을 찍었고, 협상 결렬을 선언한 의협의 경우 곧 개최될 건정심에서 요양급여비용 인상안이 결정될 예정이나 법대로라면 공단의 제시안에서 ‘패널티나 받지 않으면 다행’인 처지다.

벌써 십 수년째 수가협상 시즌이면 이 같은 일들이 똑 같은 과정으로 되풀이 되고 있어 답답하다.

그동안 수가협상과 관련하여 노정된 문제는 분명하다. 이미 수 없이 제기되었지만 의협 등 공급자단체들은 ‘계약당사자인 공단이 재정위원회가 일방적으로 정한 밴딩규모를 가지고, 원칙과 합리성이 결여된 기준을 고수하며 공급자 단체의 패를 다 읽은 뒤 종국에는 줄을 세우고 밴드 범위에서 나눠주기에 급급한 행태’라며 불공정성을 비판하고 있다.

좀 비약된 것이긴 하지만 현행 수가협상은 칼자루를 쥐고 있는 자의 뜻에 따라 받는 자들이 정해진 총액 내에서 ‘파이’를 나누는 구조가 확실하다. 그런반면 총액(밴딩)을 정하고, 이를 유형별로 배분하는 원칙은 얼마나 객관성과 합리성을 갖췄는지 의문이다.

특히 수가협상의 요체인 '밴딩'은 재정위원회가 정하게 되어 있어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며, 밴딩 규모에 대해서는 협상 당사자 중 공단만이 활용하게 되어 있어 협상이 일방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니 공급자 단체는 '이게 무슨 협상이냐'며 볼멘소리를 한다. 그러면서도 답답한 나머지 협상 때면 읍소를 하고, 그러다 안 되면 결렬을 선언하거나 심지어 건정심 탈퇴를 선언하기도 한다.

과거 의협이 협상결렬의 히든카드로 '건정심 탈퇴'를 꺼낸 적이 있었다. 이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얼핏 보아서는 수가 협상의 칼자루를 건보공단이 쥐고 있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그것은 협상당사자이기에 형식논리이고, 밴딩규모를 정하는 '재정위원회'도 명시적일 뿐 진짜 실세는 맨 뒤에 있는 정부가 모두를 헨드링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라는 의사결정기구를 두어 조정과 통제를 할 따름이다. 결국 뒤에 빠져있는 건정심이 무소불위의 힘을 갖는 것이다.

알다시피 '건정심'은 건강보험 재정지출을 관제하는 중앙센터다. 그러나 역할의 막중함에도 공익대표의 중립성 결여, 가입자와 공급자간 이해의 조정이나 갈등의 중재 등 사회적 합의도출 기구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느냐에 대한 문제를 제기 받고 있다. 이에 의료계를 중심으로 공급자단체측에서는 오래전부터 건정심의 개편과 기능 재정립을 요구해 온 바 있다. 건정심이 바로서면 수가협상도 보다 공정하고 합리성을 기할 수 있게된다는 까닭 때문이다.

따라서 수가협상의 제반 과정에 대해 기술적인 문제를 따지기 전에 그 기저에 있는 컨트롤타워를 바로세워야 한다의 의견이 많다. 단도직입적으로 적정수가에 대한 공정한 논의 구조를 만드일은 건정심이 해야 되는데 '재정안정을 절대명령'으로 여기는 현재의 목표에서 이를 제대로 수행하겠는냐는 것이다.

이에 의료사회는 건정심이 시대상황에 맞게 중립적이고 객관성을 갖춘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건정심의 설치와 운영을 규정한 국민건강보험법 부터 개정하는 시도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건보법 개정은 그동안 수가협상과정에서 제기된 재정운영위원회에 공급자단체가 참여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사항이기도 하다.

지금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원칙은 공정과 상식이다. 의료계 등 공급자 단체들이 수가계약에 대해 기술적인 문제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정책이 공정과 상식의 기반에서 펼쳐지도록 새 정부 초기에 국회와 함께 건정심의 구조개편을 위한 논의를 서둘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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