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 5월 29일 제15회 의료기기의 날 기념 특집기고⑤

지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신종 감염병 팬데믹 상황을 경험하면서 의료기기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는 기회를 얻게 됐다. 확진자가 빠르게 증가하자 대규모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가능하게 하는 분자진단시약이 신속히 개발돼 방역현장에 공급됐다.

김연수 <br>서울대병원 병원장<br>
김연수
서울대병원 병원장

또한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하더라도 주요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를 검출할 수 있는 개선된 진단시약이 적시에 개발돼 제공됐다. 특히 신규 확진자가 수만명을 넘어서면서부터 기존 PCR검사로는 검사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신속항원검사 방식의 자가진단키트가 대량 공급돼 일반 국민이 직접 감염 여부를 검사할 수 됐다.

국내 체외진단의료기기 기술이 전례없는 팬데믹 상황에서 효율적인 방역체계를 구축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국산 체외진단의료기기 제품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로 수출됐다. 그 결과 한국 의료기술의 위상을 높이고, 만성적자 상황에 놓여있던 의료기기 무역수지를 단숨에 개선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2020년도 의료기기 생산 및 수출입실적 통계에 따르면, 2020년도 생산실적은 10조 1,358억원으로 전년대비 39.24% 증가했다. 수출실적은 7조 8,315억원으로 78.8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의료기기 무역수지가 최초로 흑자 전환됐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우리나라 의료기기산업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코로나 유행 초기 갑자기 증가하는 위중증환자의 치료에 필요한 인공호흡기, 고유량 산소요법 장치, 체외막산소화장치, 지속성대체치료 장치들과 이들 장비들에 사용되는 소모성 재료의 공급부족이 심각하게 우려됐다.

글로벌 생산 및 물류 공급망이 마비되면서 수입의존적인 의료기기와 치료재료의 공급이 언제 중단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실제로 혈액투석장치는 국내 생산기반이 전혀 없기 때문에 코로나 감염자를 위한 격리투석시설을 신속하게 구축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여러 환자들이 격리시설에서 투석을 받지 못하고 병상을 기다리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상급종합병원의 국산의료기기 사용률이 11.3%라는 수치가 단적으로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의료기기산업은 80% 이상이 소규모기업 또는 스타트업으로 구성돼 있어 산업생태계가 균형을 이루고 있지 못하다는 점, 의료기기의 사업화 및 실용화가 연구개발-허가-신의료기술평가-보험-시판 후 임상-마케팅-해외 인·허가-수출로 이어지는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점 등은 여전히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우리 의료기기산업이 당면한 이런 과제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체들 그리고 많은 연구자들이 노력하고 있다. 정부는 4차산업혁명의 유망분야로 의료기기산업을 육성・지원하고 혁신의료기기의 제품화 촉진을 통해 의료기기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약칭 「의료기기산업법」을 제정했다.

또한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을 설립해 흩어져 있던 의료기기관련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사업단 중심의 일관된 시스템으로 통합하고, 기술개발에서부터 제품화·임상시험·인허가·사업화·보험등재·해외진출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전주기로 지원하는 프로세스를 구축했다.

실례로 대구와 오송에 위치한 첨단의료복합단지와 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의 의료기기 개발지원 인프라를 통해 의료기기 개발 및 생산 기업들은 시제품 제작과 성능평가, 인허가 지원 등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규제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신개발허가도우미 제도 등을 통해 연구개발 성과물로 개발된 신의료기기가 규제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을 사전에 막고 신속하게 시장에 출시될 수 있도록 돕는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런 정부의 노력에 발맞추어 국내 의료기관은 의료기기산업의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위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진료활동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연구와 기술개발을 통해 지식재산권을 창출하고 다학제 연구그룹을 구성하며, 산·학·연·병 연구과제 추진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중심’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미충족 의료수요를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관리해 신의료기술로 발전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자 의료기기 연구개발과 사업화 촉진을 꾀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역시 4차산업혁명으로 인한 기술혁신이 의료분야에 미치는 영향을 예의주시하면서 병원의 핵심연구조직인 의생명연구원이 신의료기술 개발 및 사업화의 전초기지가 되도록 혁신과 노력을 거듭해나가고 있다.

4차산업혁명은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빅데이터 기술 등이 질병의 진단과 치료뿐만 아니라, 예방과 관리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되면서 의료기기산업 분야의 스펙트럼을 날로 확장시켜 가고 있다.

서울대병원에서는 이 같은 첨단기술들을 기반으로 혁신의료기술을 개발하고 연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의생명연구원 산하에 혁신의료기술연구소를 신설했을 뿐만 아니라, 해당 분야의 융·복합 연구를 추진하고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자 융합의학기술원을 설립했다.

병원이 비단 진료활동이 이뤄지는 의료서비스 제공기관만이 아니라, 신의료기술 연구 및 실용화의 산실이 될 수 있도록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이 도전들은 차세대 핵심의료기술로 대두되고 있는 의료용 소프트웨어, 디지털치료, 유전자분석, 웨어러블의료기기 등과 같은 융합기술들의 연구개발 및 실용화에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끝으로 의료서비스의 패러다임을 진단과 치료에서, 예방과 관리로 변화시켜 국민보건 증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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