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태 <br>고려대 의대 명예교수&nbsp;<br>&lt;의사평론가&gt;<br><br>
정지태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 요즘 재벌 기업들이 대학의 이공계 학부에 계약학과를 만드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21세기 들어서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상은 몹시 빠르게 진화하는데 대학교육이 이에 따르지 못해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고, 기업에서 재교육을 해야 현장 투입이 가능하다는 불만에서 시작된 일이다.

의사 양성도 이와 비슷하다.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의사의 기준은 하늘 높이 올라가는데, 의사를 양성하는데 쓰는 교육비용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변화가 없다. 의사 양성 교육은 기본적인 시설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고, 소모품도 엄청나다. 이를 모두 수혜자 부담을 원칙으로 부모, 학생과 병원이 지고 가야 한다면 교육의 규모는 날로 축소되어 갈 수 밖엔 없다. 사회의 욕구는 늘고, 교육은 줄고, 그러면 결론은 부실한 의사 양성이고, 국민의 건강관리는 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국민이 누리고 있는 빠르고 정확한 진단과 검사, 그리고 치료는 날이 갈수록 하향하고, 지금보다 더 짧고, 더 불친절하고, 보다 저급하고, 인간미는 완전히 배제된 의료 시스템이 될 것이다.

정부가 인정하고 있듯, 원가 이하의 진료비로 병의원을 경영하려면 환자를 더 자주 병원에 오게 하고, 검사를 자주하고, 비싼 검사를 권장하고 가능한 비보험 수술을 더 많이 하고, 진료도 검사도 비보험 항목을 추천하고, 이런 양상이 점차 심화되어갈 것이다. 병원은 비용 절감을 위해 싼 인력을 구하고, 전공의 교육은 외면하고, 숙련된 전문 의료진보다는 신규 졸업한 인력을 선호하고, 환자의 만족도는 감소하고, 미숙한 간호 인력이 현장에 투입되니 피곤하고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선배들에 의한 갑질로 근무 의욕은 감소되고, 퇴직을 넘어 자살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와 사회는 노벨상 시상이 될 때마다 우리나라에서 노벨 생리의학상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냐고 묻는다. 그러면 의료의 현실은 전혀 모르는 입김 꽤나 내는 인사들이 그래서 의사과학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의사과학자 프로그램을 의과대학 마다 실행하면 곧 21세기 의생명공학을 이끌 인재가 양성될까? 환자를 진료하면서 연구를 진행할 사람이 일 할 곳은 병원이다. 업무 중 반은 환자를 보고 반은 연구에 집중한다면, 당연히 임상진료를 통한 수입은 줄어들 것이다. 이런 의사를 선호하는 병원이 얼마나 될까? 그들에게 평생 자리를 보장해 줄 병원이 그리 많을까? 경영난에 허덕이는 병원이 새로 채용하려는 의사가 자기의 근무 시간 중 80%를 연구에 투자하겠다고 하면 선선히 허락해 줄까? 이를 해결하려면 책임 연구자의 보수를 연구비에서 지급하는 방식이 보편화 되어야 한다. 현재처럼 연구 전체를 책임지는 주연구자가 대학이나 병원에서 월급을 받는 체제라면 병원이 이들을 고용해 얻는 이익은 없기 때문이다. 홍보 효과를 노린다면, 말없이 평생 연구에 매진하는 의사보다는 매스컴 노출이 용이한 분야 의사를 선호할 것이다.

카이스트나 포스텍에 의과학자 양성을 위해 의과대학과 병원을 만들면 노벨생리의학상이 가시권에 들어올까? 새로 시작한 의과대학과 병원이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최소 30년쯤 걸리는 것이 경험 있는 의학교육자들이 하는 말이다. 물론 정부가 큰돈을 쓰며 지속적으로 투자하면 조금 더 빨라지기는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새 의과대학과 병원 건립에 쓸 막대한 자금을, 척박한 주변 환경 속에서도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애쓰고 있는 기존의 의과대학과 병원에 투자하면 결실을 내는 기간이 대폭 짧아질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에 그들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들에게 생기는 이익이 없으니까, 자기 대학에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뭔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꾸미면, 전에 존재하던 것을 개선하고 발전시킬 생각을 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체제 구축을 하려한다. 아마도 각기 다른 이익집단의 본질과는 괴리된 숨겨진 욕망 때문이리라.

공공의대의 문제도 그렇고, 불법 의사 보조인력을 양성하려는 시도도 다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의료체계가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저수가, 낮은 등록금과 턱없이 부족한 정부의 지원책으로는 노벨생리의학상은 꿈꾸지 않는 편이 낫다. 차라리 우수한 인재를 해외로 보내 훈련하고 데려오는 편이 쉬운 해결책일 수 있다. 물론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애국 애족을 요구하기에는 그들이 이미 국제화된 사고를 가지고 있어 국내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 문제가 될 것이지만 말이다.

현대와 삼성이 병원을 짓고, 의과대학을 운영한지 꽤 세월이 지났다. 물론 이들이 의사과학자양성을 하겠다고 시작한 사업은 아니지만, 국내 의료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지만, 특별히 의사과학자를 많이 양성하지는 못했다. 이들이 운영하는 의과대학은 학생 수가 적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해 의과대학의 운영에 병원과 재단의 많은 자금이 들어가고 있다, 의사를 만들기까지 들어가는 양성 비용이 너무 크다는 말이다. 새로운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는 의과대학이 생기면, 대한민국의 가장 큰 두 재벌 그룹이 이루지 못한 꿈을 달성할 수 있을까? 철강 팔아 얻는 수익이나 세금 투자가 이들이 한 노력보다 더 클 수 있을까?

의사과학자, 명분은 좋지만, 정치적 판단으로 이루어지면 안되는 일이다. 모두 욕심을 내려놓고 진정한 우리에게 필요한 방식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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