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휴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감사
이진휴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감사

[의학신문·일간보사] 부의 원천이 무역이라고 생각했던 중세시대 중상주의는 자국 제품 수출을 위해 국가가 품질을 관리하는 방식을 택했다. 유럽의 인증제도는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으로 나라별 품질에 대한 평가 기준을 통일하고 인정하는 제도와 기관이 발달했다.

얼마 전 우리나라가 의장국으로서 개최한 국제의료기기규제당국자포럼(IMDRF) 총회는 국가별 규제조화에 대한 협의를 통해 더욱 안전한 의료기기 허가와 안전관리 기준을 논의하고 새로운 형태의 의료기기기에 대한 국제 기준을 마련하는 자리가 됐다. 이 같은 세계적인 변화 속에 우리나라 역시 의료기기의 허가와 관리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 산업계의 이해가 필요하다.

최근 의료기기 관련 업계가 호소하는 제도개선 어려움 몇 가지를 살펴보면 △심사요건의 강화에 따른 제출 자료 증가 △팬데믹으로 인한 특수 상황에서 오는 심사 지연 △재평가와 갱신제 등 안전관리 강화 △혁신제품 시장 진입을 위한 급여제도 개선 △부작용 피해 보상 제도 △GMP 인증 요건 강화 및 유통내역보고 등이 주를 이룬다.

이런 제도적 변화의 배경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는 국민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춰 안전성을 강화하고 책임에 따른 보상을 명확히 하며 둘째는 제조업 품질 기준을 세계적 수준으로 향상시키기 위함이다.

의료기기는 사람을 살리는 게 목적이다. 우리 국민 역시 안전한 의료기기 사용이 가장 중요한 바람일 것이다.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산업이 지속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최근 의료기기 부작용에 대한 피해자 고지 지연, 심사나 인증서류 위변조 사태 등을 겪으며 안전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흔들렸다. 이에 대한 보완책이 논의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기존 제도의 보완이나 신규 제도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도 변화는 의료기기 추적성을 높이기 위한 UDI 유통내역보고다. 완전한 의료기기란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문제가 생긴 제품에 대해 즉각적인 사용실태를 파악해 추가적 피해를 막아야 한다. 기존의 추적관리제도는 위험도에 따른 범위를 제한해 제도권 밖 품목의 관리방안 부재라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보완해 모든 제품에 대해 추적성을 갖도록 했고 방법적으로 국제 기준인 UDI 제도를 채택해 적용했다.

다만 본 제도를 도입하며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재정 안정성을 해치는 리베이트나 불법유통행위를 근절하고자 하는 정책적 목적으로 유통가격 보고 의무를 함께 부가해 이 제도로 인해 유통 투명화를 이룰 수 있게 설계됐다.

또한 안전한 의료기기를 위한 전주기 관리 제도의 변화로서 하나는 기존 허가된 의료기기를 보다 안전한 최신 규격으로 적용해 심사하는 갱신제와 다른 하나는 신규 의료기기에 대한 심사나 인증 기준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 심사기준을 높이면 국제조화를 통한 수출경쟁력을 갖춤으로써 결국 우리나라 국민 역시 안전한 의료기기를 사용을 보장할 수 있다.

국내 제조업 측면에서 보면 심사기준의 강화에 따른 적응 노력과 새로운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체질 개선이 없다면 결국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다.

기존 의료기기에 대한 재평가나 갱신제 역시 십 수 년 전에 허가된 의료기기가 문제가 노출되지 않았다고 계속 사용하기보다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최신 기준 규격의 잣대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안전성에 대한 기준이나 규격이 계속 변화됨에 따라 허가 당시 기준으로는 파악되지 못했던 위험성을 재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작용 보상을 위한 의료기기 배상보험 의무 가입제는 기업으로서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또, 새로운 제도라는 점에서 거부감이 있다. 하지만 명백한 의료기기의 부작용 때문에 일방적으로 피해를 본 환자를 생각한다면 꼭 필요한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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