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안병정 기자] 의료계가 입법저지를 위해 백방의 노력을 기울였던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결국 국회를 통과했다. 그동안 의료계는 직능을 초월하여 입법 부당성과 문제점을 여론에 호소하며, 정치권을 설파하는데 전력투구 했지만 역부족 이었다.

이런 결과에 지금 의료계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선 회원들 사이에서는 ‘총 궐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으며, 의협 지도부 역시 감정을 자제하고는 있지만 ‘끝까지 투쟁할 것’을 예고하여 앞으로 어떤 국면이 전개될지 관심이다.

유감이지만 법은 통과되었고, 악법도 법이다, 따라서 아무리 불합리하다 해도 법체계는 지켜 질 것이고, 한 번 만들어진 법은 무너뜨리기 어렵다.

그러나 이미 제기되어 온 것처럼 이 법률로 인해 야기될 잠재적 해악이 워낙 커서 걱정이다. 특히 국민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진 세태를 감안하면 이번 CCTV 설치법은 향후 의료분쟁을 조장하는 촉매로 작용할 소지가 다분하다. 나아가 CCTV화면에 노출된 애매한 장면을 놓고 벌이게 될 논쟁들을 떠올리면 진료실 문화는 더욱 삭막해 질 게 뻔하다.

의료분쟁도 걱정이지만 환자인권을 앞세워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 또는 의료사고의 가해자로 취급하는 정서는 더 큰 문제로 꼽힌다. 제한적이라고 하지만 법이 정하는 대로 CCTV가 의사를 감시하는 상황이 실제 벌어진다면 과연 집도의사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수술에 몰두할 수 있을지, 또한 이처럼 불신 받는 여건에서 환자에 대한 열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의료계는 이런 문제를 들어 ‘교각살우(矯角殺牛) 해서는 안 된다’며 입법 불가론을 폈지만 국회는 ‘국민의 부름에 대한 응답’이라며, 강행처리하는 수순을 밟고 말았다.

그러나 법은 국회가 만들었지만 뒤는 책임지지 않는다. 뒤 책임, 즉 시행의 주체는 정부다. 그래서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하위법령 정비에 관심이 쏠린다. 만시지탄이나 시행이 유예된 앞으로 2년 동안 정부가 의료계와 관련 단체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 법정신은 살리되 의사들의 자존감이나 인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차선으로 기대할 따름이다.

의료계도 소모적인 투쟁을 외치기보다 이 법률안이 지닌 잠재적 해악을 세밀히 규명하여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서 의사들의 부담이나 피해가 최소화 되도록 정부와 적극 소통하며, 합리적인 정책 반영을 위한 명분을 제공하는데 주력했으면 한다.

따지고 보면 국회에서 법안이 만들어진 것은 우리 사회에 ‘의사들의 도덕성을 못 믿겠다’는 정서가 바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극히 일부 의사들의 일탈을 침소봉대한 것이긴 하다. 그렇다고 억울하다고 항변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그동안 의료사회의 경쟁이 심화되고 의사수가 늘어나면서 윤리의식이 결여되거나 자정기능이 미흡했던 부분이 무엇 이었는지 성찰하며, 악행을 막을 방도를 찾는게 중요하다.

비록 정치권은 의료계의 목소리를 외면했지만, 의료계는 입법저지 과정에서 공언했던 ‘내부의 자정기능 강화’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를 통해 의사들이 국민적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조직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CCTV 촬영 요구는 나오지 않을 것이고, 결국 의료법 개정 법률안의 ‘수술실 CCTV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항은 사문화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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