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아니면 새로운 기술·가치창출 불가능

글로벌 의료기기기업 우수한 기술력 갖춘 벤처 지속 탐색
신규 의료기기 성공적 안착 위해 병원 의료진과 협업 중요

박순만

- 박순만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의료기기화장품산업단장

[의학신문·일간보사] 글로벌 제약기업들은 신약 개발에 수반되는 위험성을 줄이고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오픈이노베이션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머크에서는 머크 유전자색인(Merk Gene Index) 플랫폼으로 신약 개발 타깃 유전자 마커를 발굴하고, 머크의 표적항암제 ‘키트루다’는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적응증을 확대해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오픈 이노베이션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9월 국내 유전자 치료제 개발기업 올릭스가 프랑스 안과 전문 제약사 테아오픈이노베이션에 안질환 치료목적의 RNA 치료제 후보물질 4개를 기술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작년 12월에는 알테오젠이 인간 히알루로니다제를 개발하여 글로벌 10대 제약사 중 한곳에 13억 7300만달러 규모의 기술 수출을 하였다. 본 제품을 활용하여 일반적으로 정맥주사로 투여되는 바이오 의약품을 피하주사로 투여가 가능하여 환자 편의가 크게 증진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의료기기 분야 글로벌기업은 오픈이노베이션에 손을 놓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글로벌 의료기기 기업도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벤처기업을 지속적으로 탐색하고 있으며, 유망 기술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을 하고자 한다.

존슨앤존슨의 경우 전 세계 주요 도시에 이노베이션 센터를 운영하여 혁신기술을 개발 중인 스타트업이나 대학교, 연구소 등과 협력하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또한 전세계 12곳에 제이랩스(JLABS)을 오픈하여 바이오헬스 스타트업 기업을 인큐베이팅하고 있다. 퀵파이어 챌린지(Quick Fire Challenge)라는 혁신기술 경진대회를 통해 우수기술기업을 선정하여 지원함으로써 우수한 기술이 어디에 있는지 능동적으로 발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티앤알바이오팹이 존슨앤존슨과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이용한 생체조직 스캐폴드를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한 것이 국내 사례 중 하나이다. 티앤알바이오팹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고분자, ECM (Extra Cellular Matrix) 및 3D 바이오프린팅 플랫폼 기술을 바탕으로 생체조직 재생을 위한 제품을 개발하고, 존슨앤존슨에티콘(Ethicon)은 공동연구를 통해 도출된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에 대해 독점적으로 사업화 할 수 있는 옵션(우선협상권)을 가지는 것이다.

이밖에도 메드트로닉, 필립스, 지멘스, GE 등 다른 글로벌 의료기기 기업도 각자의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을 열어두어 기술혁신에서 뒤쳐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품의 오픈이노베이션

떠오르는 신생 의료기기 분야에는 어떠한 오픈이노베이션이 있을까? ‘디지털 치료제품(DTx, Digital Therapeutics)’의 예를 살펴보자.

디지털 치료제품은 스마트폰 앱이나 게임, VR 등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고품질 ‘소프트웨어’ 제품으로서 임상시험을 통해 인정된 치료제품을 말한다.

디지털 치료제품은 약물의 복약순응도를 높이거나 약물과 병행사용을 통해 치료효과를 높일 수 있어 디지털 치료제품회사와 제약회사 간의 협력이 가능하다.

DHP(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의 공동창업자 김치원 원장의 저서 ‘디지털 헬스케어는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에 따르면, 프랑스의 디지털 치료제품회사 발런티스는 인슐린 용량 조절 제품 인슐리아(i n s u l i a)와 다이아비오(Diabeo) 두 제품을 내놓았는데 인슐린을 만드는 사노피와 협력하여 인슐린동반 앱으로 발전 가능하고, 로슈는 당뇨병 앱 스타트업인 마이슈거를 인수하였는데 마이슈거 앱을 활용하여 자사 혈당측정기의 혈당 스트립 사용량을 높이고자 한다.

건강관리분야에서는 비만 치료 주사제를 만드는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 제약회사와 체중 감량 앱을 만드는 눔(noom)이 체중 관리 및 교육에 초점을 맞춘 디지털 건강 솔루션에 대해 협력하고 있다.

이렇게 디지털 치료제품 회사는 기존 제약회사의 약물의 복약 순응도를 높이거나 동반 제품 구성 등의 방법으로 자사 제품의 매출을 끌어 올리는 협력을 하고 있다.

의료기기 성공조건 ‘의료현장과 협력’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을 포함한 신규 의료기기는 의료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과정이 험난하다.

FDA나 식약처에서 의료기기 승인을 받았다는 것은 의료제품으로서 기본조건을 만족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성공을 위한 전략적인 투자는 그 이후가 중요하다.

보험수가를 인정받기 위한 비용 효과성 입증, 의료계에서 해당 의료기기를 활용한 치료가 표준치료로 인정하는 공감대 형성, 마지막으로 실제 사용자인 의사의 사용 편의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과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하는 임상적 안전성과 유효성이다.

그러므로 의료기기 성공에는 병원 의료진과의 협업이 중요한 인자가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의료기기 산업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 시행에 맞추어 10월부터 ‘혁신의료기기 실증지원센터’ 사업을 시작한다.

혁신의료기기와 혁신형 의료기기 기업 개발제품을 중심으로 보험등재와 신의료기술평가 등 인허가 획득 이후의 시장진입에 필요한 임상 데이터 축적에 초점을 맞춰 임상실증을 지원한다.

또한 연구중심병원, 개방형실험실 사업 등을 통해 연구역량이 우수한 병원의 임상의사와 창업기업 간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연구개발 단계에서 주목받았던 혁신성 높은 기술제품이 실제 의료현장에서 널리 사용되지 못하는 이유에는 높은 수준의 의학적 증거를 충분히 수집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정부는 잘 설계된 임상시험을 지원하여 FDA, 식약처, 보험자, 의료계가 요구하는 수준의 연구가 진행되어 혁신의료기기의 임상적 안전성과 유효성 자료를 도출하게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들은 오픈 이노베이션 관점에서 글로벌기업과의 협력과 해외진출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혁신기업 오픈이노베이션 공유 필요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루어진 의료기기 분야의 기업 파트너링은 대부분 일회성 행사로, 글로벌 기업의 담당자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 정도였다. 그리고 국내기업은 파트너링 전문가가 부족하여 글로벌 회사의 BD (Business Development) 전략과 파이프라인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정부, 잘 설계된 혁신의료기기 임상 지원 필요
의료기기 다품종 소량생산 산업…한 곳서 다 만들기 어려워
美기준 품목수 4000개 넘어…의료기기 틈새시장 기회의 땅

국내기업이 글로벌 회사와 협력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이고 분석적인 자료를 준비해야하는데 기존 국내 브로셔를 영문으로 번역한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신약, 바이오 분야에서는 ‘혁신신약 살롱’이라는 모임이 대전을 시작으로 판교, 오송, 대구, 송도, 서울 등 5곳에서 활동중이다.

다양한 전문가들 간의 느슨한 교류를 통한 open innovation 방식으로 자발적, 독립적, 비상업적인 순수 민간주도 모임이다. '혁신신약살롱'은 '혁신 신약'을 주제로 국내외 연사들의 세미나를 듣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모임이다.

다섯 개 도시에서 정기 오프라인 모임이 열리고 4000명 이상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토론하는 규모로 확대되었으며, 살롱에 참여한 사람들 간의 창업, 공동연구, 투자 연계 사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의료기기분야에서도 혁신 신약 분야처럼 민간 주도의 자발적인 정보 교류 모임이 생성되기 어렵다면 정부가 초기에는 오픈 이노베이션 정보 교류를 위한 환경 조성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올해 복지부에서 처음으로 선정하는 혁신형 의료기기기업을 대상으로 오픈이노베이션 성공 사례 공유 및 분석, 파트너쉽 개발을 위한 필요 사항 논의 및 다국적사 파이프라인 이해, 신기술 의료기기 개발 정보 공유 및 세부 전문분야별 네트워크 구성, 다국적사 Business Development 전문가 초청 정보 공유 등 활발한 정보 공유의 장을 조성하고 활성화 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며 오픈이노베이션이 가장 활발히 일어나는 곳이다.

혁신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들이 자본시장의 투자를 받아 성장하고, 대규모 마케팅과 유통망을 가진 글로벌기업과 전략적 제휴가 활발히 일어나는 혁신기술 시장이다.

우리의 혁신의료기기와 혁신형 의료기기기업의 글로벌 성공을 위해서는 미국에서의 의미있는 성과가 필요하다.

미국 내 바이오헬스 생태계에 우리의 기술과 제품이 노출되어 미국 내 오픈이노베이션 생태계에서 배워가며 성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제약분야에서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보스턴 캠브리지 이노베이션센터(CIC)에 10개의 제약기업을 입주시키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CIC에서는 입주 기업 간 교류와 각 지역 기업·연구소 등과 실시간 정보공유 및 파트너십이 이뤄지기 때문에 연구개발(R&D) 협 업이나 기술이전, 합작투자법인(JV) 설립 등이 활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의료기기분야에서도 미국 현지 거점을 가진 공공기관에서 미국 진출 지원센터 역할을 수행하여 국내 혁신형 기업들의 미국 파트너 발굴 및 전략적 제휴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오픈이노베이션 기회의 땅 의료기기

복지부와 진흥원은 2011년부터 5년간 의료기기개발촉진센터 사업을 통해 의료현장의 의료기기 아이디어를 발굴ㆍ평가ㆍ연구해 제품개발로 연결하는 One-stop 의료기기 개발 시스템을 구축 지원한 바 있다.

그 사업에 참여했던 연구원이 의료기기 오픈이노베이션의 가 능성을 보고 창업한 회사가 솔메딕스(양인철 대표)이다.

이 회사는 ‘모자익’이라는 공동연구 플랫폼을 고안하여 의료진의 아이디어를 제안받아 외부 전문가들의 블라인드 평가를 통해 기술을 선별하고 제안자와 협약을 통해 공동연구개발을 하게 된다.

또한 유망기술은 있는데 GMP 공장이 없는 R&D 전문기업을 위해서 ‘모자익 팩토리’라는 개방형 GMP 공장을 운영하여 위탁생산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

공공기관인 오송첨단의료기기 개발지원센터도 Open-Factory 사업을 통해 GMP 시설에 부담을 느끼는 창업기업을 지원하는 사업을 올 10월부터 시작한다고 발표하였다.

연구개발을 시작으로 창업하는 소규모 벤처기업에게는 이러한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이 외부의 역량을 빌려 초기 투자의 부담을 줄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의료기기산업은 대표적인 다품종 소량생산 분야이다. 미국기준으로 품목수가 4000개가 넘을 정도로 의료기기는 다양하다. 그것은 아무리 큰 글로벌 기업이라도 해당 질환군의 모든 의료기기를 다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료현장에서의 아이디어는 지속적으로 의료기기 개발의 원천이 되어 틈새시장 제품을 생산하게 하고, 새로운 기술의 출현과 도입은 혁신적인 의료기기 개발을 유도하게 된다.

보건산업진흥원 보건산업혁신창업센터의 관리 기업 중 70% 이상이 의료기기기업이며 매년 신규 의료기기기업이 200개 이상 창업하는 우리나라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가치 창출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만큼 의료기기 오픈이노베이션에서는 기술창업자의 역할이 중요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지원이 큰 의미가 있다.

유망 창업기업에 대한 전주기적 지원을 하고 있는 ‘보건산업혁신창업센터’나 ‘지역클러스터-병원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20년에는 범부처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단이 출범하여 대규모 의료기기 R&D 사업이 시작되었고, 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의료기기산업법이 제정·시행되었다.

혁신형 의료기기기업을 중심으로 유망한 기술제품이 혁신의료기기로 인증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혁신제품들이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등 전 세계로 뻗어나갈 오픈이노베이션의 씨앗이 될 것으로 믿는다.

그렇게 하여 머지않아 ‘BIO KOREA’에서 의료기기 오픈이노베이션의 성공사례가 발표되고 전략적 제휴를 위한 기술인력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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