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대한종양내과학회 암 정밀의료 네트워킹그룹 팀장
<분당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디지털과 데이터 기술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구원투수로 등장하며 새로운 기준, 즉 '뉴 노멀'을 만들어가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환자와 의료진의 숙원사업이었던 ‘다학제 진료 활성화’에도 제2, 제3의 물결을 가져올지 의료현장의 기대가 높다.

한동안 다학제 진료를 통한 정밀의료는 ‘뜬구름’처럼 여겨졌다. 도입 필요성에는 모두가 공감했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많이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가가 인정되고,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 유전자 검사에 급여가 적용되면서 유전체 정보에 따른 정밀의료 활성화에도 속도가 붙었다.

제2의 물결은 다학제 진료의 화두인 ‘효율화’ 문제를 디지털 도구가 해결하면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늘날의 다학제 진료에는 유전자 검사 결과를 해석하고 치료에 적용하기 위해 기존의 임상, 병리과를 넘어 유전자 정보학, 임상시험, 중개 연구 전문가까지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하며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반면 다학제 진료 준비 및 진행과정은 10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분과마다 각기 다른 포맷으로 자료를 보내면, 누군가 이를 일일이 취합해 회의를 준비하고, 매번 환자정보와 새로운 지침을 손수 업데이트하며, 논의내용 정리해 공유하는 과정이 반복돼 의료진의 피로도가 높아졌다. 이에 정형화, 표준화된 형태로 임상적 의료결정을 지원해 줄 솔루션이 더욱 필요해졌다.

이러한 배경에서 대한종양내과학회에서도 지난 5월부터 종양관리를 위한 디지털 솔루션 ‘네비파이 튜머보드’에 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한국보다 먼저 이 같은 도구를 활용해온 해외에서는 의료진의 의사결정 시간이 절반 가까이 단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툴에 전자 의무 기록(Electronic Medical Record, EMR) 데이터를 연계하거나, 기본적인 환자 정보를 입력하면 자연어분석을 통해 관련 임상시험, 간행물, 가이드라인을 확인할 수 있으며, 표준화된 방식으로 일목요연하게 치료 의사결정에 필요한 데이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이 데이터 기술과 만나게 되면, 진정한 의미의 정밀의료라는 제3의 물결이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는 21세기의 석유로 비유되지만 아직까지 병원 내 진단 및 치료기록, 처방정보는 여기저기 분산되거나, 종이에 수기로 남아있는 등 ‘정제되지 않은 원유’로 남아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을 통해 보건의료 데이터가 표준화, 구조화되면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며, 이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는 빅데이터 분석 및 AI 머신러닝 분석을 거쳐 다른 암 환자가 더욱 정밀한 맞춤의료를 받도록 하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다학제 통합진료를 기치로 창립된 대한종양내과학회는 앞으로도 새로운 디지털, 데이터 기술을 도입에 앞장서며 교육, 연구, 진료를 포괄하는 분야에서 정밀의료의 현장 적용 활성화에 앞장서 나가려 한다. 그러나 정밀의료 구현은 단일 학회만의 힘으로 이뤄낼 수 없다.

현장의 의료진과 의료기관 모두가 암 환자의 치료성적 향상이라는 비전 아래 힘을 모으고, 적극적으로 혁신에 도전할 때, 의료계의 오랜 꿈이 현실로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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