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21>

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

베토벤은 최초 클래식 비지니스맨이었다!

[의학신문·일간보사] 1770년도 독일 본 출생의 루드비히 본 베토벤은 역사상 최초의 자유 음악가라고 일컬을 수 있다. 그는 동시대 음악가들과 달리 유난히 경제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알코올에 중독되어 제대로 가장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아버지 밑에서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낸 것이 분명 작용했으리라.

베토벤은 17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가장의 역할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었다. 그는 12살 때 스승 네페의 추천으로 궁정 오케스트라의 보조 쳄발로 주자로 일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무급이었으나 얼마 안되어 그 능력을 인정받아 ‘직업 음악가’로서 일하면서 (거의 무능력자였던 아버지를 대신하여) 생활비를 벌게 된다. 어린 시절의 베토벤은 그 시대 여느 음악인들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한 것이다.

17-18세기 음악인들의 삶은 매우 열악했다

그 시대 음악인들은 보통 교회나 왕궁에 종속된 전속 음악가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17-18세기 음악인들은 패트론(Patron), 즉 경제적 후원없이 먹고 살기가 힘든 구조였던 것이다.

가령, 바흐(1685-1750)는 교회에 피고용인으로서 자신에게 요구된 작품들을 작곡하고 연주했지만 항상 불안정한 일자리로 인해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정치와 권력의 다툼으로 인해 자리 싸움에서 억울하게 밀려나기도 하고, 부당한 요청을 요구받기도 하였다.

하이든(1732-1809)은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음악 집사’로 고용되어 무려 30년 동안이나 노예계약에 묶여 있었다. 그의 업무는 가문의 전속 오케스트라 및 단원들 관리를 비롯하여 에스테르하지 후작과 그의 지인들을 위한 이벤트와 요구에 맞춘 수많은 작품들을 쓰는 것이였다. 겉으로는 수많은 작품을 창출했고, 상당히 안정적인 삶을 산 것처럼 비춰졌지만, 작곡가 자신의 예술적 창조 만족은 전혀 채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평생 속박된 종의 위치로 살아야 하는 것에 상당히 힘겨워했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신동, 모차르트(1756-1791)의 삶은 달랐을까? 어릴 적부터 국제적으로 각광 받던 천재 음악가는 귀족이나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평생 분노하며 갈등 가운데 살았다. 천방지축 음악가는 돈과 권위로 자신의 예술 작품이나 삶을 컨트롤하려는 시도를 상당히 괴로워하였고 이런 그의 마음은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 등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베토벤은 성장한 이후 이런 사회의 구조 안에서 살기를 당당하게 거부하였다. 그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다. 혈혈단신으로 빈에 도착한 베토벤을 처음으로 후원했던 리히노프스키 공작과는 베토벤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최고의 후원자’라고 표현할 정도의 끈끈한 관계였다. 그런데 어느 날 공작이 자신을 만나러 온 베토벤에게 프랑스 장교들 앞에서의 연주를 요청하자, 당시 황제가 되려던 나폴레옹에게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베토벤은 공작의 요구에, “당신과 같은 귀족은 얼마든지 있으나 베토벤은 세상에 나 하나뿐입니다”라고 화를 내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고 한다. 사실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굳게 믿고 이를 실현하는 것으로 보였던 나폴레옹을 오랫동안 숭배하였으나, 나폴레옹이 왕이 되려고 하자, 그에 대한 숭배가 분노와 반감의 대상으로 바뀌어져 있었던 것이다.

베토벤, 악보 출판으로 수익 내는 비지니스 시도

패트론의 후원도 없어지고, 프랑스-오스트리아 전쟁으로 인해 연금마저 끊겨서 상당히 심각한 경제적 위기를 직면한 상황에서도, 베토벤은 그는 악보 출판으로 오랜 기간 동안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도모한다.

당시 유럽에서는 저작권 개념이 제대로 형성 되어있지 않은 시기였고, 음악인들은 대부분 자기 작품의 초판에 한해서만 출판 수입을 배당 받고, 재판의 수익에서는 전혀 혜택을 볼 수 없었다. 베토벤은 새로운 시도를 한다. 예를 들어, 작품이 정식으로 출판되기 전에 특정 귀족에게 독점 사용권을 얼마 기간동안 판매하고 사용권이 만료되면 출판에 들어가는 방법, 다양한 출판사에 판매 독점권을 일정 기간 허용하는 방법, 초판에 자신의 서명을 한 악보를 여러 개 만들어서 귀족들에게 판매하는 방법 등을 말이다. 베토벤의 이러한 비지니스 적인 시도는 후대 작곡가들이 보다 안정적인 경제적 생활을 하는데 좋은 발판이 되었다.

자존심과 자립심이 아주 강했던 베토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계급 주의에 반발하며 경제적인 자립과 예술 창작의 자유를 시도했다. 패트론으로부터 독립을 향한 그의 분투는 그 무엇보다도 자유롭게 자신의 예술을 창작하기 위한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자신의 가치와 예술을 돈과 권위로 살 수 없다는 의지를 온 몸으로 보여준 그의 삶은 후대 음악가들 뿐 아니라, 21세기에 사는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에 대한 도전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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