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성 구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이사장

대한의학회 회장‧의사평론가

[의학신문·일간보사=의학신문 ] 옛날 어른들께서는 병을 호되게 앓고 난 아이들에게 철이 많이 들었다고 칭찬을 해 주셨다. 어려움을 격고 나면 뭔가 새로워진다는 격려의 말씀이셨다.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새로운 경험은 모든 사람에게 변화의 전환점이 되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아직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전대미문의 강력한 감염력으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온 지구상의 사람들을 공포와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COVID-19 감염병이 며칠사이 우리나라에서는 좀 수그러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희망을 가져 본다. 이 홍역 같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우리는 마음속으로 어떤 변화를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는 과거 3-5년 주기로 여러 번의 virus성 전염병의 유행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이번과 같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감염방지 대책을 적용한 일없다. 이 방법을 통해서 우리는 또 새로운 경험을 하였다.

‘COVID-19’는 제도와 관행 바꾸라는 중요한 메시지

이번 코로나 감염병의 창궐이라는 고통 속에서 삶의 방법이나 사회 모든 분야의 제도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우리 모습을 되새겨 볼 때가 되었고, 앞으로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 문화에는 소위 skinship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 서로 간에 피부를 맞대는 것이 우리에게는 아주 낯선 문화다. 가장 대표적인 서양식 skinship의 인사는 악수가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인을 만나면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혀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집안 어른이나 그에 준하는 가까운 분을 만나면 절을 하는 것이 우리의 상례였다.

사실 서양 사람들에게 악수는 서먹서먹한 사이에서 행하는 관행적인 인사일 뿐이다. 서로 간에 볼을 맞대고, 볼에 입을 맞추고, 코와 코를 비비고 나아가서는 입을 맞추는 것이 밀접함의 표시다. 그들의 문화이기 때문에 좋고 나쁨을 논할 필요는 없다. 다만 COVID-19와 같은 감염병이 돌았을 때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중국이라는 특수한 주거환경과 특이한 식생활 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를 제외하면 이번 corona virus의 대 유행이 서양에서 폭발적으로 발생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인들은 식사 중에 아주 즐겁게 대화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예전에 우리는 밥 먹는 동안은 아주 조용했다. 어른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 전부였다. 가정집에서의 식사도 절에서 스님들 식사 때 만큼이나 조용했다. 그러나 요즘 우리문화는 서양 사람들 뺨치는 정도가 아니라 공중도덕을 따져야 할 만큼 난장판 수준인 경우가 허다하다. 모든 지나침은 제자리를 찾게 하는 것이 항상 중요하다. 그러나 혼거, 혼밥, 혼술이 우리 사회에서 점차 늘어가고 있는데 과연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닌 듯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들이 정착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적인 기업들도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라는 감염병으로 실업자로 전락한다는 경험을 통해서 사회적 역학 관계를 꼭 인식하여야 한다. 그렇게 부러워했던 유럽 사회의 의료시스템과 의료의 질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동시에 우리 스스로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영국식 의료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정치 친화적인 의료계 인사들도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물론 그들은 반성 대신 궤변을 늘어놓을 것이지만 그래도 반성의 기회를 갖기 바란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나 의료의 질에 대한 그동안의 폄하 적 평가에 대해서 솔직해 질 필요가 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의사라면 무조건 질시의 대상으로 삼고 몰아세웠던 사회적 분위기도 이제는 솔직함에 바탕을 둔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 져야한다. 특히 의사에 대한 정치권의 고착된 부정적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 아울러 정치가들만이 이 나라를 이끌고 갈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정치가는 권력을 잃으면 그뿐이지만 바이러스는 새로운 모습으로 몰려오고 국민들은 또 다시 고통 속에 생존하여 이 나라를 지켜가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교육도 변혁, 지식의 유통과 생산방식 바꿔야

이번 코로나 폐렴으로 가장 크게 당황한 분야가 교육 분야 일듯하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정부나 교육계가 제4차 산업혁명을 입으로만 외쳤다는 증거가 입증된 교육적 혼란이다.

교육 선진국에서는 이미 대학교육의 상당 부분은 대량 online 공개강좌인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를 통해서 쉽게 배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어디에서나 명문대학의 학위를 딸 수 있다. 예를 든다면 미국 Arizona 주립대학은 80개 학사학위 과정을 online으로 제공한다. 연간 학비는 5,000USD 이며 졸업장의 어디에도 online을 통해서 취득한 학위라는 차별 점이 없다.

이것은 전통적인 명문대학이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이며 지식의 생산과 유통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즉 online 단기 직무교육과정만 필요한 시대가 다가 온 것이다(one-point lesson). 교수는 teaching assistant or consultant의 역할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은 online or AI(인공지능)를 통해서 강의를 듣고 지식을 습득하게 되며, 대학에는 단지 학생들 본인들이 추가로 필요한 정보나 이해를 위하여 필요한 내용만 교수들에게 요구하는 시대가 온다. 물론 교육의 형태에 따라서 실습을 필요로 하는 의학, 공학 등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교육이 필요하지만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전반적인 대학교육자체가 이렇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적 상황을 수년전부터 부분적으로나마 준비 했었더라면 이번의 혼란은 상당부분 미리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의 아픔을 반면교사로 삼아 지속적인 노력과 개선을 통해 우리나라 대학 교육시스템 자체에 대대적인 변혁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제 대학 자체도 엄청나게 거대한 빌딩과 대규모의 집단적 건물의 위용을 통해서 대학의 권위를 자랑하던 일은 구시대의 유물임을 알아야 한다. 수 만 명의 학생들이 매일 같이 강의실을 찾아 떼 지어 움직이는 시대도 끝이 났고, 교수들 중에 본인들의 고유한 역할보다는 정치 사회적인 분야에 훨씬 더 많은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은 대학 사회에서 퇴출시켜 사회로 내 보내야 한다.

이번 감염병 사태를 통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집단적 이기주의와 폐쇄적인 구조를 갖고 있었는지 여실히 들어 났다. 과거에 우리가 자랑했던 상호부조(相互扶助)나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름다움은 구시대의 폐물로 취급하였고 유유상종(類類相從)의 집단폐쇄주의만 남아서 이웃사촌 행세를 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전체 국민들이 좌·우로 나뉘고, 보수와 진보로 찢어진 현상의 일부를 대변하는 듯하다.

우리는 걸핏하면 민주 시민 사회의 자랑스런 시민임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 권리와 “나”만을 내세우고 내가 중심이 된 판단 기준 속에 존재하는 시민이었다. 얼마나 이타심(利他心)에 인색하고 이기심에 집중하며 살아 왔는지 반성하여야 한다. 이타심의 결핍은 곧 불안한 사회 현상과 나 스스로가 곤경에 처하게 되는 첩경이다.

감염력이나 독성이 강하지 않았다면 그저 지나가는 독감이 되었을 지도 모를 COVID-19(코로나 폐렴)은 우리에게 많은 고통과 함께 개인 뿐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 반성할 점과 재정립할 사회 시스템에 대하여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전문분야 시책은 전문가단체 의견 적극 수렴해야

아울러 정부는 전염병과 같은 사회적인 현상에 대하여 정부의 일방적 선입견을 갖고 달려들어서는 안된다. 항상 전문가의 고견을 수렴할 줄 알아야 하며, 정부가 할 일은 전문가들의 취합 된 의견을 바탕으로 세운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 그룹은 정부가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학술 단체이어야 한다.

인류역사상 유럽은 1347년 페스트로 유럽인구가 1/5로 줄어들었고, 1493년 매독의 창궐로 역시 유럽 전체 인구의 25%가 사망하였다. 남북 아메리카 원주민은 야만적 행위에 따른 천연두의 창궐로 1518년 2500만 명이던 인구가 약 100년 뒤인 1620년에 160만 명만 살아남았고 찬란했던 아즈텍 제국과 잉카문명이 뿌리째 사라졌다. 이렇게 무서운 것이 전염병이다. 현대 의학이 발전하는 만큼 virus도 다양한 돌연변이(mutation)를 일으켜 점점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대처하여야 한다.

여하튼 이번 COVID-19 전염병에 대하여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희생자고 또한 승리자다. 필자는 지난번 메르스 사태 때도 이와 똑같은 말을 하면서 정부 당국에 부탁하기를 포상은 있을지언정 문책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한 필부의 의견은 역시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엄청 고생했던 정부 속의 의사들은 대량 숙청(해고 및 문책성 면직) 되었다. 이번에도 그때와 같은 일이 또 발생 된다면 ‘코로나 폐렴 후유 증후군’이라고 이름 붙여 주고 싶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의 훌륭한 역학 조사관인 메리 최(한국계 미국인)의 말을 소개하면서 글을 줄인다.

“전염병에는 특효약(silver bullet)이 없다. 사람들은 최신 백신에만 집착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열쇠는 정부, 의료진, 주민간의 신뢰다. 사회적 협력 없이 신기술만으로는 확산을 막을 수 없다. 전염병이 확산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김없이 비난 대상을 찾아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따진다. 그 와중에 언론들은 위기 상황을 진정시키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 CDC의 역할은 비난 대상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감염의 뿌리부터 전 과정을 분석해 재발을 막는다. 대개 전염병 확산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라 모든 경로에 있다. 훌륭한 의사란 겸손(humility)하고 정직해야 한다. 어느 환자나 신뢰할 수 있는 의사를 원한다. 병에 대해 뭔가 알았을 때, 심지어 모른다는 사실조차 환자에게 솔직히 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좋은 의사는 경청하는 사람이다.”

한국이름 최정원 선생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조지워싱턴 의대를 졸업한 응급의학 전문의로 미 육군 군의관을 제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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