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보사 30주년 창간특집]

연준흠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

[의학신문·일간보사] 2017년 8월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정책, 일명 ‘문재인케어(이하 문케어)’를 발표하며 약 20조원이 넘는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을 사용하여 단계적으로 보장성 강화를 진행할 예정임을 밝혔다. 동시에 ‘의료기관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적정 수가 보전’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문케어 시행 3년 차인 지금 정부가 약속했던 적정수가의 보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1977년 건강보험 도입당시, 정부는 당시 개발도상국의 문턱에 들어서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보험료 지불수준을 고려하여 ‘저부담-저수가-저보장’ 일명, 3저 체제를 기본으로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이후 우리나라의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어냈고, 이에 따라 ‘적정부담-적정수가-적정보장’으로의 근본적인 건강보험체계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되었지만,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공약에만 혈안이 되었고, 결국 건강보험료 인상과 수가 개선은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다.

결국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 속에서 의료기관은 생존을 위하여 원가 이하의 급여 진료보다는 비급여 진료에 더욱 치중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일부 진료과로의 의료공급 집중, 지역 간 의료격차 등 국가 보건의료체계의 왜곡을 불러일으켰다.

건강보험 저수가 문제는 단지 의료계의 일방적인 주장인 것이 아니라, 이미 여러 공신력 있는 연구에서 입증이 된 바 있다. 연세대학교 산학협력단의 연구에 따르면 의원급 원가보전율은 62.2% 수준이며 진찰료 원가보전율은 50.5% 수준임을 밝힌바 있고,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에서도 의원급 원가보전율은 85%, 기본진료 원가보전율은 75%수준으로 건강보험 저수가 현상을 입증한바 있다.

상기와 같이 각종 연구, 그리고 국정감사를 통해서도 여러 번 지적된 바 있는 저수가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필자는 그 첫 번째 이유로 불합리한 현행 수가결정구조를 지적하고자 한다.

국민건강보험법에 의거 보건의료 공급자와 건보공단과 매년 이뤄지는 수가협상의 경우, 건보공단 재정운영위원회에서 정해놓은 총 건보재정증가분(이하 밴딩)내에서 건보공단이 발주한 연구용역의 결과를 반영하여 공급자별 순위 및 격차를 정하여 나누어 가지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협상’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건보공단이 주도하여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수가결정 과정에서 공급자의 존재감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법률상 수가협상의 당사자인 공급자단체가 총 밴딩은 차치하고 협상시 가장 중요한 건보공단 연구용역 결과도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즉, 저수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최우선 방안은 현행 수가결정구조의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협상의 당사자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더해 새롭게 편입되는 급여 항목들의 현실적인 수가 수준 책정과 지나치게 제한적인 급여기준 및 심사기준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완화하는 것이 적정수가에 다가갈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상기와 같은 적정수가로의 전환과 국민들의 의료서비스 수요에 맞는 건강보험 급여체계를 갖추기 위해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 건강보험료의 인상이다. 현행 우리나라 건강보험료율은 ‘6.67%’로 우리와 경제수준이 비슷한 제외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물론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인해 국민들의 부담을 높이기 어렵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오히려 사회적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합리적인 투자라는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 적기라 할 수 있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위기 상황에 대한 의료분야의 대응 능력 향상뿐만 아니라, 올바른 건강보험제도 정립을 위해 주도적으로 건강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조속히 이끌어 내야한다. 또한 건강보험료 인상만을 통해서 건강보험 재정문제와 적정수가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으므로, 국고지원 확대 역시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저수가 상황에서 의료기관들은 가능한 많은 환자들을 진료해야만 의료기관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보니, 환자 입장에서는 짧은 진료시간으로 인한 불만이 발생하고, 의료기관 입장에서도 의료진의 과로와 임상적 위험을 감내해야 하는 실정이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같이 대규모 감염병 상황에서는 현행 진료체계가 얼마나 위험한 환경인지 실감하게 된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의료기관부터 건강하고 안전한 체계가 마련되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저수가 체계를 벗어나야 하며, 모든 건강보험 재정을 보장성 강화에만 투입하는 식의 포퓰리즘 정책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정부는 ‘저부담-저수가-저보장’ 체계를 탈피하여 ‘적정부담-적정수가-적정보장’ 체계로 개선해 나가기 위해,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의료계와 조속히 협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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