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보사 30주년 창간특집]

장성인
연세대 의과대학 예방의학 교수

[의학신문·일간보사] 2019년 12월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까지 우리나라 보건의료계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문재인 케어였다. 문재인 케어의 공식명칭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으로, 이름 그대로 건강보험을 통해 우리나라 국민의 의료보장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담고 있다.

그동안 이 보장성 강화대책에 대한 많은 우려와 비판이 있어왔는데, 그 중 가장 명료한 것이 재정적 측면, 즉 지속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 이 글에서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의 의미를 살펴보고 지속적으로 국민의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을 짚어보고자 한다.

국민건강보험은 사회보험으로 전국민이 당연가입 되어있고, 국민의 보험료를 재원으로 하여 미래의 불확실한 건강위험에 대비하는 방법으로 국민의 건강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건강보험을 통해 국민은 필요한 의료수요를 충족시켜야 하며, 국민의 의료에 대한 경제적 접근성이 제한되지 않아야 함’을 말하며, 필요한 급여범위와 충분한 급여 수준을 의미한다.

국제보건기구는 구체적으로 적용 대상 인구(breadth), 급여 서비스 범위(depth), 보장되는 비용의 분율(height)의 세 가지 개념으로 보편적인 보장성을 설명하였다.

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63.8%(2018년)인데, 이는 해당 조사가 시행된 2005년에 비해 오히려 감소한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CED)의 공공보장성 지표로는 이보다 더 낮은 60%가 채 못되는(59.8%, 2018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우리가 비교하기 좋아하는 OECD국가들의 평균(73.8%, 2018년)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이런 낮은 ‘보장성 수치’의 답보에서 벗어나고자 ‘보장성 수치’ 70%를 목표로 하는 획기적 방법의 보장성 강화 대책이 나왔다. 그 획기적 방법은 의료비 중 통제하기 어려운 부분인 비급여를 급여화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해서 환자의 부담을 감소시키는 여러 가지 방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의료비 중 환자의 부담 비율을 현저히 감소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보장성 수치’를 높이는 것이 건강보험이 국민의 건강을 더 잘 보장해 주는 것과 같은 것인지는 의문이다. 사회보장제도로써 건강보장은 필요한 수준의 의료(Quality)를 받을 때(Access) 경제적 부담(Cost)으로 미충족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기본 골자인데, ‘비용적 부담’을 줄이는 것이 목표가 되어 필요한 의료(Qualit)의 접근(Access)이 감소하여 “실질적 의료 보장”이 감소하는 주객전도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 우려 때문이다.

보장성과 함께 중요한 것이 지속가능성이다. 지속가능성은 지속적으로 적절한 수준의 보상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인데, 주로 지속을 위한 비용 부담 수준의 문제로 귀결된다. 보장성이 높아질수록 비용이 상승하여 지속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에 보장성과 지속가능성은 시소의 양 끝과 같지만, 건강보장으로서는 둘 다 놓칠 수 없는 핵심 가치들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지속가능성을 위해 건강보험의 보장성(급여 범위나 수준)의 양보가 요구되어왔다. 고령화나 신의료기술의 발전 등 지속가능성의 위협 요소들이 눈앞에 보였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보장성 강화를 천명한 지금도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들은 그대로 남아있다. 과연 보장성 수치가 아닌 실제 보장을 향상시키면서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가 큰 의문이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건강보험의 재정적 위기를 경고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보장성을 포기할 수도 없다. 국민의 경제수준이 향상되고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의료에 대한 기대치와 요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아직 재정적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도달하게 되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던 의료보장의 후퇴를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 때를 대비해서 건강보험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제한없는 고민이 필요하다.

보장성과 지속가능성을 모두 잡기 어려운 것은 둘이 같은 재정의 울타리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므로, 재정의 투입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재정의 투입에 대해 국민이 거부감을 갖는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의료는 무료가 아니므로 높은 기대수준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값을 지불해야 하는데, 아프지 않은 사람의 주머니에서 돈을 강제로 꺼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어려움 때문에, 값 싼 물건을 비싸보이게 포장하여 비싼 것을 싸게 제공한다고 광고해 봤자, 포장은 곧 벗겨지게 되어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사람들이 자신이 구매하고자 하는 물건(의료)에 대해 제값을 기꺼이 지불하도록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기꺼이 주머니를 열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와 상황을 충족시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 이는 상품 뿐 만 아니라 구매 방식에도 적용된다. 지금 우리는 단 하나의 상품을 단 하나의 보험자에 의해서 단 한 가지의 방식으로만 구매하고 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해야 할 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간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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