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17>

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

[의학신문·일간보사] 피아니스트는 직업으로 피아노를 치는 사람, 즉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은 단순히 건반을 치는 것과 어떻게 다를까?

피아노 건반을 치는 손가락의 움직임은 얼핏보면 타자기를 치는 모션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타자기는 아무런 감정 없이 두들길 수 있는 반면에, 피아노 건반을 칠 때에는 음 하나하나에 감정을 싣는다. 운동 선수가 반복되는 연습을 통하여 동작들을 익혔다고 해서 기계처럼 자동으로 움직여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연주자도 수십, 수백 시간을 연습하였지만 손에 익은 대로 생각없이 음표들을 치는 것이 아니다. 연주자의 감정은 연주하는 동안에 파도같이 출렁이면서 감정들을 소리로 표현해 내는 것이다.

감정 담아 피아노 연주하면 심박수 증가

그렇다면 피아노를 연주할 때 연주자의 뇌와 몸에는 어떠한 변화가 있을까?

일본 조치대학(上智大学) 이공학부 교수이자 피아니스트인 후루야 신이치 박사(‘피아니스트의 뇌’ 저자)는 운동생리학자인 나카하라 박사팀과 함께 피아노를 연주할 때 피아니스트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측정하기 위하여 심전도와 호흡 분석 장치로 연주자의 호흡, 심박수와 발한량을 조사해 보았다.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심박수= 감정을 담아서 연주했을 때 심박수가 높게 나타났다. ‘연주할 때 몸을 많이 움직여서 심박수가 상승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았다.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감정을 담아서 연주했을 때에도 심박수는 증가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사람의 평균 심박수가 77bpm이라면 감정을 빼고 기계적으로 연주하였을 때에 83bpm, 감정을 담아 연주하였을 때는 91bpm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자율신경계= 감정을 담아 연주했을 때 교감신경(활동적일 때 일하는 신경)은 상승하고 부교감신경(쉬고 있을 때 움직이는 신경)은 감소하였다. 즉 음악을 느끼면서 연주 할 때 연주자의 신경이 엄청나게 활발하게 일한다고 할 수 있다.

▲연주자의 호흡= 연주자의 호흡수는 감정을 담아 연주할 때 감소하고, 호흡량은 증가하였다. 예를 들어, 기계적으로 연주할 때에 호흡이 1분에 20회 정도였다면, 음악을 느끼면서 연주할 때에는 1분에 17회 정도로 횟수가 줄어들었고, 이런 현상은 곡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즉, 감정이 고조될수록 연주자의 호흡하는 횟수는 줄어들고, 호흡은 깊어짐을 알 수 있었다.

음악에 감동 받으면 도파민 분비량 촉진

음악을 감상하는 경우에는 어떨까? 감상만 하더라도 뇌와 몸에 변화가 있을까?

캐나다 맥길(McGill) 대학의 자토레 교수는 PET(양전자단층촬영)장치를 사용하여 음악을 감상할 때, 즉 감동을 받을 때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험을 해 보았다.

흥미롭게도 찌릿찌릿하는 감동을 느낄 때 활동하는 뇌 부위가 밥을 먹거나, 마약을 흡입하거나, 성적 자극을 받아 쾌감을 느낄 때 활동하는 부위(뇌의 네트위크를 형성하는 ‘보상계’로 불리움)와 같았다고 한다.

2011년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 학술지 발표에 따르면, 음악에 감동할 때 활동하는 뇌의 기능을 PET과 MRI(자가공명영상)로 살펴본 결과,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감동을 느낄 때 줄무늬체라는 뇌 부위에서 도파민(뇌가 보상을 받을 때 흘러나오는 신경전달물질)이 많이 분비되었다고 한다. 뇌에서 감동이라는 ‘보상’을 예측할 때와 (꼬리핵 부위), 감동하는 순간에 (측좌핵=쾌락중추 부위) 많은 양의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음악을 감상하는 것은 단순한 듣기의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우리 몸이 그 음악에 감동하면서 반응하는 적극적인 활동인 것이다. 그리고 이 적극적인 활동은 역으로 뇌에 ‘보상’을 제공해 줌으로써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 유튜브 채널 “김윤경의 소소한 클래식”에서 다양한 음악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필자는 평생 음악을 공부하고 피아노 스킬을 연마해 온 직업 연주자다. 누구나 음악 감상을 통하여 감동의 순간을 경험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몸이 아프고 마음이 무척이나 힘들었을 때 음악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다시 인생을 대면할 수 있는 긍정적인 힘을 얻었던 기억들이 있다.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많은 일들이 외부적, 내부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 시기에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으로 삶 속의 불안, 염려와 아픔을 덮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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