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및 출판윤리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얼마사이 의학계 오피니언 리더 그룹과 석학단체에서 연이어 성명서를 발표했고, 대한의사협회는 연구 윤리 위반으로 지목된 의사회원을 중앙윤리위에 회부하기도 했다.

안병정 편집주간

다들 아는 것처럼 요즘 제기되는 연구 윤리는 정치권에서 촉발된 것이다. 그래서 ‘정쟁이 수그러들면 흐지부지 끝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는데 석학단체가 문제의식을 엄중히 여기고 정책 당국과 유관 기관 등에 근본적인 대책을 권고하고 나서 다행스럽다.

솔직히 연구나 출판 윤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 사태 말고도 지난날 심심찮게 문제가 불거졌었지만 어찌 된 일 이었는지 그 때마다 대부분의 사안들이 유야무야 되곤 했었다. 그 배경에는 윤리 문제를 법으로 세세하게 규정하거나 다스리는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세부 전문분야별로 독특한 카르텔을 형성해 온 의학계 내부의 조직문화도 하나의 원인이 되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일부라고 하지만 연구나 출판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지 않고 저자로 이름을 올리거나, 반대로 실질적인 기여를 다하고도 저자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소위 손님저자, 선물저자, 유령저자, 강요저자, 상호지원저자와 같은 편법, 탈법의 부당저자 사례가 그 대표적인 유형들로 꼽혔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연구계가 그토록 타락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결코 허투루지 않고, 일탈을 방기한 것도 아니라고 믿는다. 그런 측면에서 연구자 부정사례가 극히 일부라는 사실은 맞는 것 같다.

그동안 정부기관은 물론 주요 연구단체에서는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논문 출판윤리 가이드라인’ 또는 ‘저자자격 기준’ 등을 마련하여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윤리기준을 확립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시스템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연구윤리가 심심찮게 불거지는 것은 그 기준이 불비해서가 아니라 연구자들의 의식이 부족했거나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준은 잘 만들어져 있는데 ‘도덕적 규범이나 양심을 믿는다’는 측면이 있었다면 이 부분이 느슨했다고 볼 수 있다.

어찌되었건 이번에 제기된 ‘연구논문 저자 자격시비’는 비록 정치적인 문제에서 촉발된 것이지만 그동안 의학계에 내재했던 연구와 출판윤리의 어두운 구석을 다시 한 번 들춰내고, ‘이래선 안된다’는 내부의 자성을 일깨워 준 기회로서 잘하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의과학계와 의과학인 모두는 지금의 자리에서 직업전문성과 윤리의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시에 연구 관련 정부 부처와 기관, 전문가 단체는 연구윤리를 어디까지 양심이나 도덕적 기준에 맡길 것인지 재검토하여 윤리적 잣대로 사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사안별로 보다 엄격하고, 세세하게 법령으로 규정해 나갈것을 주문해 본다.

나아가 우리나라 특유의 입시 제도를 감안하여 이번 기회에 고교생이 인턴으로 단기간 연구에 참여한 경우라면 논문생산에 기여한 정도를 떠나 저자로 등재할 수 없도록 법제화 하는 등 소위 스펙 쌓기 용 통로를 근본적으로 막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 방법이야 전문가들이 정할 일이다. 다만 우리 사회는 사고가 터졌을 때 지탄을 쏟아내고, 경악을 하다가도 여론이 잠잠해지면 없었던 일이 되어버리곤 하던 폐습들이 왕왕 있었다. 제발 이번 만큼은 그런 일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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