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11>

피아니스트 김윤경의 클래식 편지

요제프 하이든 (1732~1809)

[의학신문·일간보사] ‘개천에서 용났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음악가가 있다. 바로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요제프 하이든(1732~1809)이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로라우라는 조용한 마을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수레바퀴를 만드는 일을 하였고, 어머니는 부잣집에서 요리사로 일을 하였다.

하이든은 8살 때 집을 떠나 빈의 유명한 슈테판대성당 합창단(지금의 비엔나 소년합창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첫 직장인 셈이었다.

악덕 고용주 덕에 봉급은 아주 적었지만 하이든은 생존을 위해 열심히 노래 연습을 하면서 하프시코드와 바이올린을 틈틈이 배워 나아갔다. 그러나 17살 때 변성기가 찾아오면서 합창단에서 쫓겨나게 되고, 거리를 전전긍긍하면서 길거리 연주, 레슨, 작곡, 무도회 반주 등을 닥치는 대로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고 한다.

하이든이 8살부터 속해 있었던 비엔나 소년 합창단의 현재 모습

당대 가장 명성을 날린 작곡가에게 딱히 지목할 만한 스승이 없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하이든은 실제로 이때부터 음악 공부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독학으로 불태웠다. 간간히 벌은 돈으로 낡은 하프시코드를 자신의 다락방에 올려 놓고 밤을 세워가면서 연습과 작곡에 매진하였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차차 하이든이란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가 25살 즈음에 모르친백작이 소유한 관현악단의 음악감독이라는 번듯한 직책을 얻게 된다. 그 당시에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개인 소유의 관현악단이 있었다. 하지만 곧 백작은 전 재산을 잃게 되고, 관현악단을 유지할 수가 없게 되자 하이든을 비롯한 모든 악사들을 해고하게 된다.

개천에서 용난 하이든의 삶은 ‘음악하인’

일자리를 잃고 전전긍긍하던 하이든은 곧 자신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선택을 하게 된다. 1761년, 그는 헝가리의 오래된 왕족 가문인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음악감독으로 일하게 되고 이때부터 30년 동안이나 이 가문의 귀족들을 섬기게 된다.

그렇다면, 에스테르하지 가문에서 하이든에게는 자신의 명성에 걸맞는 인생이 펼쳐진 것일까? 다음은 하이든(을)이 에스테르하지 가문(갑)과 맺은 첫 계약 내용이다.

  • ‘을’은 흰 스타킹을 신고, 흰 셔츠를 입고…땋거나 머리 주머니로 고정한 가발을 쓴 똑 같은 모습을 유지한다.
  • ‘을’은 다른 음악가들과 함께 먹고 마실 수 없다.
  • ‘을’은 ‘갑’이 요청하는 곡은 어떤 곡이든 즉시 작곡한다.
  • ‘을’은 매일 오전과 오후에 ‘갑’에게 저녁의 음악회 관람 여부를 물어봐야 한다.
  • ‘을’은 여자 가수들을 가르쳐야 한다.
  • ‘을’은 다양한 악기 연습을 계속해야 한다.
  • ‘을’이 퇴사하고자 할 때 6개월 전에 알려야 하지만, ‘갑’이 원할 때 언제든지 ‘을’은 해고당할 수 있다.


그렇다. 하이든은 결코 귀족 가문의 음악감독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다 세상을 떠난, 편한 인생을 살았던 음악가가 아닌 것이다. 그는 에스테르하지 가문에 종속된 ‘음악 하인’에 불과했다. 하이든이 에스테르하지 가문으로부터 받는 급여 수준은 형편 없었으며, 뿐만 아니라 계약에 따라 법적으로 하이든의 작품들은 모두 대공의 소유였기에 하이든은 악보를 출판하여도 돈을 벌지 못했다고 한다 - 이 계약은 첫 계약 이후 18년 정도가 지나서야 수정되었다.

헝가리의 에스테르하지 성

또한, 에스테르하지 성은 외각에 위치하고 있어서, 하이든은 세상과 단절된 삶으로 인하여 더욱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덕분에 하이든은 셀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을 작곡해 나아갔고 -물론 대공의 입맛에 맞춰야 했지만- 이로 인해 하이든의 명성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나는 세상에서 단절되었다…그래서 독창적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30년을 한 가문의 충실한 종으로 일한 하이든은 비로소 58세에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오케스트라가 해체되면서 자유를 얻게 된다. 그 이후 런던에서 작곡과 음악회 공연을 하면서 진정한 자유 음악인으로서의 인생을 즐기면서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

‘놀람’ 교향곡 들으며 무더위 날리세요!

저명한 첼리스트이자 작가인 스티븐 이설리스는 “하이든의 음악적 실험은 늘 성공했다. 그의 음악은 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예상을 뒤엎고, 언제나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며 하이든을 역사에 손꼽히는 독창적인 작곡가라고 말한다. 그의 즉흥적이고 기발한 재치는 그가 런던 시절에 작곡한 몇 개의 명곡 들 중 하나인 <놀람> 교향곡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교향곡은 조용하게 시작하여 2악장까지 고요하게 진행되다가, 갑자기 요란한 팀파니 소리와 함께 모든 악기가 엄청난 소리를 내어 관객이 화들짝 놀라 깨어나게 만든다. 하이든은 당시 관객들이 음악회에 배부르고 취한 상태로 와서 연주를 듣다 곯아떨어지는 것에 대하여 심히 불쾌하게 생각했고, 이런 관객들을 각성시키고자 이와 같이 작곡한 것이다. 참으로 기발하지 않은가.

하이든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후배 음악가들에게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많은 존경을 받았는데, 이러한 그의 인품이 가릴 정도로 그의 음악은 탁월했다.

자신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꿈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인생의 승리자 요제프 하이든에게 다시 한번 존경과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무더위 속에서 나른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하이든의 <놀람> 교향곡을 들으며 상쾌하게 놀라는 기분 전환을 하는 것은 어떨까.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