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중국 시행 결과 단기간 의료비 증가…장기적 안목 접근 필요
현장에선 케어플랜 잘 세우지만 비현실적 수가로 교육엔 한계 지적

[의학신문·일간보사=한윤창 기자] 국민 의료비를 줄일 것으로 기대되는 만성질환관리제도가 외국의 사례를 볼때 단기간에 기대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따라서 제도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의료계 현실을 반영한 수가 조정 등의 보완책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건강보험공단과 보건복지부는 27일 오후 세브란스 병원에서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심포지엄’을 열어 만성질환관리제도의 시행 경과를 돌아보고 향후 발전 방안을 모색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김정하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의료계 입장에서 본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의 전망’을 주제로 발표했다. 김 의무이사는 만성질환관리 시행 상의 난점을 제기했다.

우선 만성질환관리제도에 따른 의료비 경감 전망에 대해 그는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김 이사는 “2016년 보고된 한 논문에서 우리와 비슷한 의료체계를 갖고 있는 중국과 대만이 이 제도를 시행한 결과 직접비가 오히려 늘었다”며 “단기간에 의료비가 경감될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이러한 점을 감안하고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홍콩의 경우 5년간의 경과가 좋은 사례인데 이곳은 공공병원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라며 “만성질환관리제도를 우리나라에서 들여와서 민간에서 시행되는 것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김 이사는 만성질환관리제도 관련 연구에 대한 비판점도 제시했다. 그는 “헬스케어 딜리버리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미국에서는 대학병원 혼자가 아니라 중소병원이 연구결과 도출에도 참여한다”며 “의원을 설득해서 참여시키고 직접 모델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그렇다고 대학병원급 모델을 그대로 의원에 적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 이사의 주제발표에 앞서 박형근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추진단장은 ‘일차의료 만성질환관

리 현황과 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고혈압·당뇨 인구 증가에 따른 만성질환관리 중요성을 제시했다.

2018 대한고혈압학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혈압 추정 유병자는 1100만명으로 이중 의료를 이용하지 않는 인구가 210만명, 지속 치료를 중단한 인구가 530만명, 질환 조절이 안 되는 인구가 590만명에 달한다고 소개했다.

박 단장은 “30~50대에서 고혈압 인지율이 낮고 40대 남성은 10%대를 기록하고 있다”며 “인지율을 끌어올리는 데는 동네의원뿐만 아니라 공중보건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고 보건소·공단의 협력·연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 시범사업의 해결 과제로는 조절률이 저조하다는 점을 들었다. 당뇨병의 경우 치료자 기준 조절률이 유병자 기준 조절률보다 크게 높지 않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치료 받고 있는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병 조절이 잘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다.

박 단장은 “유병자와 진단자 사이에 별 차이가 없는 상황”이라며 “치료율은 2005년 이후 상승하고 있는데 인지율은 큰 변화가 없고 조절률도 정체 상태”라고 밝혔다. 덧붙여 “유병자의 43.1%가 치료를 받지 않고 진단자의 90.5%가 치료를 받고 있으나 유병자와 진단자 혈당조절 수준 분포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은 케어 모델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박 단장과 김 의무이사의 주제발표에 이어 심포지엄에서는 이건세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의 사회로 패널토론이 진행됐다.

조현호 대한개원내과의사회 의무이사는 만성질환관리제도 정착을 위해 환자·의사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그는 1000만 명에 달하는 환자 중 참여자가 1%밖에 되지 않는 현실을 꼬집었다. 조 의무의사는 “의사들은 규정대로 하지 않으면 실사에서 (수가가) 다 삭감되고 행정처분 받을 것을 두려워 한다”며 “핵심 내용만 전달하는 선에서 환자 교육시간을 5~10분으로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태욱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회장은 1차 의료현장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의료현실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취지다. 유 회장은 “만성질환관리제도가 현실적으로 잘 되기 위해서는 실제 의료현장에서 갖는 어려움이 반영돼야 한다”며 “개인적으로 하루 25%의 시간을 여기에 투입하고 있지만 경제성은 높지 않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코디네이터의 자격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유 회장은 “간호사나 영양사가 고용돼서 의사에게 교육을 받고 코디 역할을 하도록 양성된다고 할 때 그들이 고혈압의 복잡한 의학적 문제를 환자에게 교육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한영란 대한간호협회 정책위원은 간호사가 만성질환관리 교육을 수행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정책위원은 “교육의 상당 부분은 꼭 의사가 아니어도 간호사가 할 수 있다”며 “의료법이 간호사의 역할로 교육·상담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간호사가 이런 역할을 담당한다면 의사의 업무량과 1차의료비용이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선 대한당뇨병학회 부회장은 만성질환관리 분야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뇨병 관리의 핵심은 약이 아니라 환자의 생각·의식 개선이라는 것이다.

박 부회장은 “현장에서는 케어플랜을 잘 세우지만 비현실적 수가로 인해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의원에서 당뇨병 환자 교육을 실시하는 날은 진료 대신 교육만 해야 하고 그 대신 충분한 수가를 보장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그는 “수가를 제대로 잡는다면 개원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으로 내다봤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