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문화로 읽다<6>

그림은 도구·재료 따라 ‘미학’ 달라져

[의학신문·일간보사] 심한 두통, 구토증세와 함께 시력마저 나빠져 글쓰기가 어려웠던 니체는 1882년 첫 주 자신이 주문한, 세계 최초로 상용 출시된 덴마크제 몰링 한센 타자기를 받았다. 덕분에 그는 자판만 외우면 눈 감고도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그해 3월 베를린의 한 신문은 그가 그 어느 때보다 상태가 좋으며, 타자기 덕분에 저술 활동을 재개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타자기는 그의 글쓰기에 미묘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친구인 작곡가 하인리히 쾨젤리츠는 그의 글이 전보다 축약되고 간결해졌음을 감지했다. 그는 니체에게 보낸 편지에 “아마도 이 기기를 이용하면서 새로운 언어를 갖게 될 것이네”라고 쓰고,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는 “음악과 언어에 대한 내 생각들은 펜과 종이의 질에 의해 종종 좌우되지”라고 말했다. 니체는 이에 대해 “자네의 말이 옳아. 우리의 글쓰기용 도구는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는 데 한몫하지”라고 대답했다. 미디어학자 키틀러에 따르면 타자기 사용 후 니체의 글은 논쟁에서 금언으로, 생각에서 말장난으로, 미사여구에서 전보 스타일로 바뀌었다.

동서양은 서로 다른 미학 추구

그림도 마찬가지다. 쾨젤리츠나 니체의 예와 같이 그림도 그리는 도구와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스타일이나 추구하는 미학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유화는 유화 맛이, 수채화는 수채화 맛이 있다. 우리는 이를 ‘재료의 맛’이라고 한다. 그리는 도구로는 붓과 펜 등이 있고, 재료라 하면 종이, 천, 벽 등과 함께 먹, 템페라, 유화 등 각종 물감이 있다. 동양과 서양 모두는 처음에 붓으로 벽에 그린 점은 같았으나 점차 도구를 달리 개량했고, 각기 다른 재료로 그렸다. 결국 그림 그리는 도구와 재료의 차이로 인해 서로 다른 미학을 추구하게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붓은 인류가 그림 그리는 데 사용한 가장 오래된 도구 중 하나다. 인류 최초로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린 선사시대인들도 나뭇가지를 돌로 다져 붓털 같이 만들어 사용했다. 고대 그리스 조각의 모태가 된 이집트인들도 갈대 펜(reed pen)을 만들어 필기구로 사용하였으나, 그림 그리는 데는 주로 붓을 사용했다. 고대 중국에서는 진(秦)나라의 몽염 장군이 붓을 발명하였다고 하나 사실은 붓을 개량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결과 한대(漢代)에는 서체가 전서에서 예서로 바뀌었다. 또한 일필휘지로 기운생동 하는 서예 미학의 정수인 초서가 등장하는 때도 대략 이즈음으로 추정한다.

붓의 개량과 더불어 후한대(後漢代)인 105년 채륜이 종이를 개발했다. 종이는 값비싼 비단을 대체했다. 종이의 개발로 지필묵이 모두 갖추어져, 비로소 사의(寫意), 즉 사물의 재현보다는 그리는 이의 뜻을 중히 여기는 문인화(文人畵) 미학의 토대가 마련됐다. 지필묵은 필기구이면서 동시에 화구이기 때문이다. ‘서화일체’와 ‘서화동원’과 같은 이론이 성립하기까지는 이처럼 글 쓰고 그림 그리는 데 같은 도구를 사용했음도 일조했다.

사의를 추구한 문인화 미학을 ‘경계(境界)의 미학’이라고도 한다. 경계는 개인의 수양이나 수련을 통해 도달한 어떤 정도를 의미하는 경지(境地)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이는 중국 철학이 인간연구를 출발점으로 삼아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도리를 모색했던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따라서 경계의 미학은 지필묵이라는 도구와 재료의 특성이 이와 같은 철학 전통과 결합하여 공고해졌다.

대부분 붓은 동물의 털로 만든 모필(毛筆)이다. 특히 동아시아 모필은 서양붓보다 붓털이 길고 힘이 약하다. 더불어 점차 흡수력이 높아진 종이가 생산되었다. 이런 지필이 결합하여 일필휘지로 기운생동 하는 일회성의 미학을 추구하였다. 일회성의 미학이란 붓글씨를 쓸 때 고쳐 쓰기를 금기시하는 것을 말한다. 그만큼 붓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어 일회성의 미학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서예는 동양의 추상화’로 불려

농업사회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 용필법(用筆法), 즉 붓 다루는 법을 체득할 수 있는 계층은 생산 활동에 일절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지배계층뿐이다. 여가가 충분한 그들에게 서화는 실용성을 초월하여 완상(玩賞)하는 대상이 되었다. 일찍부터 ‘예술 자체에 대한 인식’을 살펴 ‘추상화’가 이루어졌다. 그 실례가 바로 초서다. 초서에 이르면 문자기능은 현격히 약화되고 예술적 선묘감과 율동미를 중시하게 된다. 따라서 ‘서예는 동양의 추상화’라고 할 수 있다.

일필휘지의 미학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입정(入靜)의 경지’를 요구한다. 입정은 오직 한 가지 대상에 생각을 집중해서 도달한 맑게 깨어있는 상태다. 즉, 입정은 방에서 고요하게 좌우를 물리치고, 정신을 맑게 하고, 생각을 고요히 하며, 사사로움과 꾀함이 없는 상태를 일컫는다. 극도의 노력과 입정의 경지는 수신하기에 좋은 방편이다. 한편 용필법을 익혀 기운생동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반복을 통해 그 느낌을 체득할 수밖에 없다. 문인 화가는 지필묵의 특성으로부터 심신 수양이라는 교육 효과를 터득했고, 스스로 체화하게 함이 최선의 교육방법임을 자각했다.

당대(唐代)에 이르러 쉽게 통제하기 어려운 붓과 흡수력이 좋은 종이의 조합으로 기법상 수묵화가 발달했다. 수묵화가 등장한 때와 경계의 미학을 기반으로 사의를 지향하는 문인화가 대두되는 시기는 거의 비슷하다. 문인 화가는 군자를 지향하는 유생(儒生)이었기에 서화는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었으며, 여기(餘技) 즉 취미생활이었다. 이 점이 궁극에는 필력의 미학에 안주하여 더는 자유분방하게 전통에 저항하며 새로움을 추구했던 서구 아방가르드 같은 정신이 싹틀 수 없는 한계로도 작용했다.

그렇다면 서양에서는 유사한 도구와 재료를 가지고 어떤 미학이 전개되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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