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열풍 ‘일본 사케’ 세계화 주목


1961년 겨울에만 사케를 만들 수 있던 제도 폐지…연중 생산 가능
1978년부터 10월 1일 ‘사케의 날’ 제정…1980년 종이팩 사케 발매

[의학신문·일간보사] ▲메이지-타이쇼시대(1868~1926)= 메이지(明治)시대에는 부국강병정책에 의한 주세의 강화로, 재원과 일본 국세의 30%를 차지하게 된 것이 사케이다. 과학적으로 진화하는 양조기술의 시대이다.

1909년에 야마하이모토(生酛系)의 개발, 1910년에 소쿠죠모토(速醸系)의 개발, 1911년 국립양조시험소 주최 제1회 전국신주(新酒)감평회가 개최되었다. 일본양조협회가 효모를 양조장에 배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판매방법도 개선되어 1901년부터 잇쇼빙(一升甁)인 1.8리터 병이 등장하였다. 또한 양조의 금지로 도부쿠로가 쇠퇴하고, 호우로우(琺琅) 탱크가 개발되어 저장용기가 삼나무에 통에서 호우로우 탱크로 변화되었다.

▲쇼와시대(1926~1989)= 쇼와시대 시대 초기(태평양전쟁)는 더 기술적 혁신에 의해서 고품질 사케가 생산된 시기이다. 수직형의 타테가타(竪型) 정미기의 발명은 사케 기술 발달에서 최고의 역할을 하였다. 이것에 의해서 긴죠슈(吟醸酒)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전쟁이 가장 치열하던 1943년에는 사케의 배급제가 도입되었다. 전황이 악화되어 양조장의 통폐합으로 감소하였다. 1944년에는 조유코쿠제이(造石稅)가 폐지되고 급별에 의한 코코쿠제이(庫石稅) 제도가 도입되었다.

태평양전쟁 후에는 1938년부터의 배급제가 1949년에 자유화되었다.

이 시기에 사케의 수요가 가속화되었지만, 쌀 부족에 의한 사케 부족을 극복하기 위하여 쌀과 누룩으로 제조한 모로미(醪)에 물을 희석하고, 양조알코올을 섞고, 여기에 당류, 산미료, 글루카민소다 소다산 등을 첨가해서 사케의 맛과 향을 내도록하여, 저렴하게 사케를 만드는 산조우슈(三增酒)가 유행하였다. 쌀이 부족한 시대의 반영이었다.

1961년부터는 겨울날에만 사케를 만들 수 있던 것이 폐지되어, 아무 계절에도 사케 생산이 가능해졌다.

1962년부터 주세법에 의해 주류를 10종류로 구분하고, 사케는 특급·1급·2급으로 분류하였다. 1974년에 사케 양조수량이 가장 절정기였다.

사케의 표시법이 개정되어 제조연원일, 원재료, 제조방법 등이 의무 기재화되었고, 이것은 혼죠조, 쥰마이, 긴죠 등 제조방법 표시가 업계에서 통일되는 계기가 되었다. 1978년에 일본주조합중앙회에서 10월 1일을 ‘사케의 날’로 제정했다. 1980년에는 종이팩 사케가 발매되었다.

▲헤이세이시대(1989~현재)= △버블경제 시대: 사케의 다양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1990년 일본술연구회가 발족되어, 사케 소물리에인 기키자케시(唎酒師)의 인정제도가 시작되었다. 긴죠슈(吟醸酒) 붐이 생겨나서, 부드럽고 화려한 맛의 사케가 등장하고 고가로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효모의 개발도 이루어졌다. 이 긴죠슈는 젊은이들을 사케로 모이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한편 전통방식인 기코토(生酛系生)제조도 재인식하게 되었고, 모로카나마겐슈(無濾過生原酒) 등도 유행하였다.

△버블 경제의 붕괴와 다양화: 1974년을 기점으로 사케의 생산량은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세계로 진출하는 시대: 일본 내에서는 소비가 감소되었지만, 해외에서 사케의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건강을 추구하는 세태에 따라 생선과 일본요리가 주목받으면서, 초밥과 더불어 사케도 전 세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의 열풍은 대단하였다. 따라서 현제 일본은 사케의 세계화에 주목하고 노력하고 있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