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법제이사

[의학신문·일간보사=의학신문 ] 낙태죄 폐지 찬반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쟁점 사안이라 각계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데 헌법재판소가 조만간 이 문제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낼 예정이라고 한다.

낙태죄 폐지 찬반 논란에 다시 불을 붙인 건 정부의 실태조사 결과였다.

보건복지부는 14일 오전 11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한 임신중절 수술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하였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낙태 실태를 조사해 발표한 것은 지난 2005년과 2010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정부가 지난 14일 7년 만에 시행한 인공임신중절(낙태)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낙태를 둘러싼 논쟁이 격화하고 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5만 건의 낙태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이소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 3.792명 중 인공 임신중절 경험은 19.9%, 응답 여성 4명 중 3명은 낙태죄 개정도 요구하였다고 한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 존중, 사회·경제적 사유 등으로 인한 낙태 필요성에 여성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서 여성계와 의료계는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논쟁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천주교 주교회의 가정과생명위원회 산하 단체인 생명운동본부는 18일 언론 보낸 입장문에서 “여성의 죄를 면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반면 의료진 처벌조항은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형법 제 269, 270조는 각각 낙태한 여성과 시술한 의료진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중 269조의 폐지에 대해서만 동의한 것이다.

그러나 낙태 처벌조항을 담은 구시대적인 형법에 따라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과 산부인과 의사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인공임신중절(낙태) 수술을 시술한 의료진을 처벌하도록 유지하여 불법으로 규정된다면 낙태는 점점 음성화하고 부작용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의료진에 대한 낙태죄를 계속 존치시키는 경우 여성의 건강권 상실은 물론, 모성 사망률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2008년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에 의하면 2008년 1년간 전 세계에서 2160만 건의 안전하지 않은 유산이 시행되며 47,000명의 여성이 유산으로 인한 중증 감염이나 출혈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수술해 줄 수 있는 병원을 찾지 못하여 적절한 의료설비가 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수술할 경우 출혈, 자궁손상, 감염으로 인한 사망이나 불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산부인과 의사는 환자 및 임산부의 치료자로서 태아의 생명권도 존중하지만 여성의 건강권 역시 보호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여성의 건강권 확보를 위한 사회단체의 낙태 허용 확대 주장에 뜻을 같이 한다. 이미 OECD 국가 중 대부분은 낙태를 허용하고, 미국, 영국은 1970년대인 50년 전 낙태 허용 이후 의사를 처벌하지 않고 있다.

낙태의 허용 여부를 떠나 선의로 행한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하여 깊은 사려 없이 의사를 처벌하려고 하는 전근대적인 사고에 유감을 표명하고자 한다.

형법에서 낙태죄 규정을 여성과 시술한 의료진 모두에서 삭제되어야 한다.

바람직한 모자보건법 개정 방향은 임신 초기인 12주 이내에는 임신부의 요청에 따라 상담을 거쳐 낙태를 허용하여야 한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태아가 현저한 기형이 확인된 경우나 산모가 임신을 지속할 경우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 한해 12주 이후라도 예외적으로 허용하여야 한다.

다만 현행 모자보건법이 일본의 우생보호법을 차용해 만들다보니 46년이나 지난 지금 의학 기술의 발전에 비추어 개정되어야 할 것이 많다. 산모와 배우자를 중심으로 한 허용사유보다 태아사유가 추가되어야 하며, 허용기간 또한 24주라는 허용기준은 24주 출생한 신생아도 치료가 가능한 현재 실정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최근 여성단체 등에서 낙태죄를 폐지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인해 인공임신중절을 금지하는 현행법 개정을 요구하는 사회적 요구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천주교에서 낙태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치부해 의료진을 처벌하려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것으로 구시대적 발상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성 및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 명백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이상 산부인과 의사들이 원치 않는 비도덕적 진료행위와 잠재적 범죄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우리나라 여성들과 산부인과 의사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는 모자보건법과 형법 규정들을 현실에 맞게 전향적으로 개정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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