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태
한국유나이티드제약
글로벌 개발본부 전무/약학박사

[의학신문·일간보사=의학신문] 필자가 학부를 다니던 시절, 가장 인기 있고 전도유망한 과목은 의약화학(medicinal chemistry)이였다. 산업의 쌀이라던 반도체가 같은 무게의 금(Gold)보다 수십 배나 부가가치가 높지만, 정밀화학의 꽃이라는 의약품의 경우에 금의 수천∼수만 배의 부가가치를 가진다는 담당교수의 유혹 때문이었는지, 선두그룹의 동기생 중 3명이 의약화학을 전공하였고, 그 중 두 사람은 교수가 되어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한 사람은 원료약품(API active pharmaceutical ingredient)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완제의약품의 자급자족기를 거쳐서,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료의약품의 개발을 촉진하고 산업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회사가 원료를 자체적으로 합성하고, 그걸 가지고 완제품까지 제조하는(α에서 Ω까지) 경우에는 보험약가를 높게 준 적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런 정책이 없어지니 우리나라가 포기한 빈자리를 이제는 인도나 중국의 회사들이 메우고 있고, 중국산 발사르탄 원료사태에서 보듯, 예기치 않은 유연물질(impurity) 혼입으로 많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였다.

흔히 우리나라는 안보적으로는 미국과 혈맹관계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밀접한 관계라고 한다. 실제 한국제품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는 중국이고, 2위가 미국으로 대중국 수출액의 약 절반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리고 대중국 교역에서는 우리나라는 항상 흑자를 보아 왔다. 수출 10대 품목의 면면을 보면 반도체, 자동차, 선박해양구조물 및 부품, 무선통신기기, 평판디스플레이 및 센서 등으로 한눈에 봐도 이익이 많은 고부가 가치 제품들이다.

중국의 의약품시장 규모는 양적으로는 연간 14~17%로 고성장률로 팽창해서 2017년에 이미 내수 170조원을 달성하여 단일 국가로 세계 2위가 되었지만, 질적으로는 양적 성장에 못 미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연구개발력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국내 신물질 신약이 1999년에 허가된데 비해, 중국은 2015년에 와서야 미국유학파에 의해 임파선 암 치료제가 허가된 정도로 아직은 혁신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의약품 분야만 대중국 무역역조

이런 가운데 유독 의약품 분야에서 만은 무역역조를 나타내고 있다. 대중국 의약품수출은 3.7억달러, 수입은 12.5억 달러로 약 8억 달러의 적자이다. 짐작 하듯 역조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원료의약품이다. 싼 인건비와 큰 시장, 아직은 우리보다 느슨한 정부 규제로 중국은 7000개 이상의 제약공장이 춘추전국시대처럼 경쟁하고 있다. 중국허가당국 스스로도 이들 모두 철저하게 관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된다.

필자가 예전에 중국 원료사를 방문하고 놀랐던 것은 베이징에서 비타민C(ascorbic acid)를 합성해서 아시아와 유럽으로 수출하는데, 한 번에 제조하는 단위가 킬로그램(kg)이 아닌 톤(ton)단위여서 ‘수도 베이징에서 오폐수관리는 어떻게 하며, 저렇게 대량을 생산하면 품질관리는 어떻게 할 것이고, 만약 품질관리가 철저하다면 우리나라의 원료합성은 고사하고 말겠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뿐 아니라 우리 정부도 무분별하게 저가 원료의약품이 범람하지 않도록 2002년부터 원료의약품 등록(Drug Master File, DMF)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점차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원료의약품을 합성하기 위해서 제조소 자료(site master file, SMF), 생산설비, 반응 공정, 반응에 사용된 모든 물질의 기준규격, 포장, 저장방법 등 상세한 내용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미리 등록해서 허가를 받는 제도이다. 아마 DMF란 제도가 없었다면 제조공정(synthetic process)을 바꿔도, 유연물질이 미량으로 생겨나도 파악할 방법조차 없었을 것이다. 흔히 의약품제조의 기준인 cGMP의 c도 current를 의미하는데, 현재 알고 있는 최선의 과학지식을 반영하라는 의미이다. 무엇이든 완전무결한 제도는 없으며, 부작용이 생기면 고쳐나가는 과정의 반복인 셈이다.

지금에 와서 보면 약학대학에서 그렇게 전도양양하게 의약화학을 전공한 사람은 값싼 중국원료에 밀려서 그다지 환영 받지 못하는 3D업종이 된 듯한 느낌이다. 수백 리터에 달하는 유기용매를 다뤄야 하니 육체적으로도 힘든 일일 것이고, 정말 정밀한 합성이라서 비교우위에 있는 원료도 흔치 않을뿐더러, 이무나 흉내내기 어려운 경제적인 합성방법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원료도 생물학적 공정으로 전환

수만 배의 부가가치를 가진다는 원료도 따지고 보면 화학보다는 인터페론(γ-interferon)이나 에리스로포이에틴(erythropoietin) 같이 생물학적공정(Biotechnology)으로 전환되는 추세이다. 하지만 싼 인건비에다 대량생산이라는 경쟁력을 내세운 중국도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환경에 대한 규제와 더 높은 정밀성에 대한 글로벌의 요구, 정부의 규제강화로 세계의 공장으로서 기능도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누가 값싸게 대량생산을 하느냐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정밀화학은 정말 이름에 걸맞게 원하는 순도의 제품과 원하지 않는 유연물질을 줄이는 기술의 싸움이라는 교훈을 얻은 셈이다. 우리나라가 강점이 있는 이 분야가 시들지 않도록 제도에 허점이 있었다면 그 부분을 잘 보완해서 정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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