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신문·일간보사=김영주 기자]기업들에게 있어 매출순위는 일종의 자존심 이었다. 예전 시리즈 기사의 발행 순서가 경쟁업체에 비해 후순위로 밀릴라 치면 마치 큰 일 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시기도 있었다.

김영주 부국장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물론 순위의 변화에 기업이 둔감할 순 없다. 요즘 같은 주총시즌이 되면 1위 기업이 어디이고, 1조 클럽엔 몇 곳이나 가입 했는지가 화제의 중심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 같은, 현재의 드러나는 부분이 제약기업을 평가하는 모든 것은 아니다. 당장의 실적과 더불어 미래비전 이라는 또 다른 평가기준이 존재한다. 어찌 보면 후자(미래비전)가 전자(현재 실적) 보다 더 중시되는 것이 현재의 업계 분위기 이다.

그리고 제약기업 미래비전의 다른 말은 ‘신약개발과 글로벌 진출’ 이다, 우선 어떤 경쟁력 있는 신약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는 지가 중요하다. 혁신성, 상품화 가능성, 시장성 등이 그 우수성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또한 글로벌 진출을 위한 준비가 얼마나 잘 돼 있는 지도 기업을 평가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특히 큰 기업들은 ‘미국 진출 없는 글로벌 진출은 의미가 없다’며 질적, 양적 부분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미국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제약기업들의 의식변화는 CEO들의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일간보사·의학신문이 연초 진행한 주요 제약 CEO 릴레이 인터뷰에서 한미약품 권세창 사장은 ‘매출 1조 달성이 국내 제약기업의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보령제약 최태홍 사장은 ‘향후 3년, 5년, 10년 내 신약개발을 통한 글로벌 진출에 어떤 회사가 가 있느냐가 중요하다’고도 했다. 그런가하면 종근당 김영주 사장은 ‘종근당 포함 3~4곳 신약개발 포커스 기업의 경우 향후 4~5년쯤 후에는 혁신성을 갖춘 글로벌 신약개발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유한양행은 매출순위로 보면 압도적 1위 기업이다. 그러나 이정희 사장은 ‘앞으로 10년 후에도 1위 기업으로 남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 지에 대해 고민 한다’고 했다. 그는 외형에 비해 다소 미진한 연구개발 부분 보충을 위해 국내·외 유망 벤처 및 신약기술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 및 오픈 이노베이션에 온 힘을 쏟아 왔다. 최근엔 비소세포폐암 신약 등 다수의 유망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보, 신약개발 기업으로 위상을 높이고 있다.

예전에도 국내 순위가 큰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는 있어 왔다. 그러나 다분히 잘 나가는 기업에 대한 질투와 부러움의 표현으로 해석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글로벌 신약개발은 선진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져 왔고, 글로벌 시장 진출 역시 여의치 않았던 시대였던 때문이다.

지금은 상황이 확 달라졌다. 글로벌 혁신신약 탄생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데 제약산업계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유망 신약 등을 무기로 미국 및 유럽 등 선진국에 대한 직접 진출을 위한 노력도 점차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글로벌 혁신신약 하나면 판도가 달라진다. 연간 조 단위 매출 품목이 나온다면 당장의 순위가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과연 10년후 쯤 제약 매출순위 집계의 제일 꼭대기에 어떤 이름이 적혀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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