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의료계의 화두인 의료전달체계를 놓고 2년간의 조율이 실패로 돌아가자, ‘밥그룻 싸움’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의료전달체계는 적은 규모의 의원급에서 감기 같은 경증환자를 진료하고 진료 능력이 안 되면 대학병원 등 대형병원으로 보내 치료 받도록 하는 제도다.

이정윤 편집부국장

즉, 가능하면 경증환자는 동네의원에서 처방약으로 치료하고, 큰 수술이 동반되는 중증질환은 시설이나 인력이 구비된 대형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라는 취지다.

이런 의료전달체계가 있음에도 가벼운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 몰리면서 북새통을 이루는데 반해 상당수 동네의원들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현실이 ‘의료전달체계 재정립’ 목소리를 키웠다.

메르스 사태 당시 의료전달체계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정부가 의료전달체계 손질에 나섰으나 의원급과 대형병원급간 2년간 협의가 불발에 그치면서 양보없는 싸움을 밥그룻에 빗댄 것이다.

의료계에선 의원과 대형병원들이 각자 처한 입장에서 현실과 논리를 동원해 조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발=밥그룻 싸움’으로 치부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한다.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국가정책을 밥그룻으로 폄훼한게 온당치 못하고 설령 백번을 양보해 밥그룻 싸움을 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뭔가라고 반문한다.

그렇다.

상대가 있고 경쟁을 벌인다면 우리나라 아니, 세계적으로 밥그릇 싸움이 아닌 현상이 어디 있는가.

정치인은 정당을 만들어 표를 얻기 위해 정책경쟁을 하고 숱한 협상이 결렬돼도 밥그릇 싸움 소리를 듣지 않는다.

노조와 사측은 임금인상이나 복지 등을 놓고 극한 싸움을 벌여도 밥그릇 용어가 등장하지 않고 양대 노총은 노동정책을 놓고 노조원 또는 노조 환심사기를 해도 밥그릇을 사용하지 않는다.

방송과 신문들이 한정된 광고시장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제도를 만들기에 노력하고, 공중파 방송과 종편 등 유선방송들은 광고수익을 높이기 위한 별별 싸움을 해도 밥그릇은 거론되지 않는다.

경쟁상대가 있으면 갈등은 으레 있기 마련이다.

의사들의 다툼을 밥그룻으로 비하하는 것은 다른 노림수가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돈도 있을 법한 의사들이 돈만 밝히는 시정잡배로 전락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의료전달체계 조율 실패로 화두를 돌리면 동네의원은 경증환자를, 대형병원은 중증환자를 진료한다는 총론에는 대체적으로 합의된 상태다.

하지만 외과계 의원에 입원실을 두느냐는 문제로 양측의 심사가 뒤틀렸다.

어떤 경우도 완벽한 합의는 드물다.

총론에 공감대가 조성되면 드러난 통계나 여론, 미래 비전 등을 감안해 의협.병협 등 협상주체들이 결심하고 그것도 실패하면 정부가 합목적적인 결정을 내리면 된다.

20개가 넘게 소분화된 직능의 이익이 달린 문제를 합의하라는 주문은 연목구어다.

걸핏하면 밥그릇싸움으로 치부되는 현실에 의료계가 반발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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