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학, 융복합 중심 자리매김 필연

한희철
고대의대 생리학 교수

우선 여기서 기초의학의 정의는 기본적인 의학연구를 의미하며, 기본의학연구란 의학에 있어서 기본적인 인체의 생명유지기전과 질병발생 및 치료기전을 연구하는 분야를 뜻하며 기존의 기초의학이나 임상의학을 모두 포함하지만 의학의 아카데미즘을 중심으로 한 개념임을 밝혀둔다.

요즘 융복합이 유행이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융합이 화두가 되고 일견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분야의 연구자들이 모여 서로를 이해하기에도 어려운 것처럼 보이는데도 모여서 함께 토론한다.

융합의 목적은 창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과정이다. 융합과 관련하여 그동안 논의되었던 개념들은 다음과 같다.

즉 통합(integration: 이질적이고 물질적인 단위들을 묶음, 물리적 합침), 융합(convergence: 하나 이상의 것이 녹아서 하나가 됨, 화학적 합침), 통섭(consilience: 녹아 합쳐진 것에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 짐, 생물학적 합침),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 study: 다양한 전공분야와 교류하는 연구), 범학문적, 복수학문적 연구(trans- & multi-disciplinary study: 여러 학문 분야의 협력연구)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한 방향을 향한 지향적 혹은 관성적 사고보다는 다양한 방향성을 가진 교차적 사고(crossthinking)를 통하여 창의성을 극대화 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익히 알려진 메디치효과(Medici effect: 서로 관련이 없는 것들이 결합해 뛰어난 작품을 만들거나 아이디어를 창출해 내는 것)로 융합의 목적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학문의 융복합은 교차적 사고를 통한 새로운 발명을 가속화시키기 위하여 필요하며 특히 예측이 쉽지 않은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면서 학문의 융복합은 분명히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학문의 융복합 필요성을 더 이상 강조할 필요는 없으며, 이미 학문의 융복합은 미래의 당연한 연구방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와 같은 융합의 의미를 생각할 때 의학은 융복합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 학문적 성격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

의학은 수학, 물리와 같은 순수학문의 성격보다는 순수기초학문의 바탕위에 종합적인 접근에 의하여 인체의 생리기전을 밝히는 형태로 발전하여 왔기에 종합학문의 성격이 강하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의학이 융복합을 통하여 발전하여 왔지만 보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의학은 순수학문의 성격보다는 복합학문의 성격이 강하여 융복합연구의 대표적인 분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일차적으로는 기초의학을 기본으로 중개연구와 임상연구가 한데 어우러져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인체의 정상 및 질병발생기전은 아직도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은 상태이며, 이러한 기전들이 밝혀지면서 질병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질병극복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기초의학은 기본의학연구를 대표하는 분야이지만 기초의학자 뿐만 아니라 인체의 정상 및 질병기전에 관심을 가진 모든 연구자가 참여할 수 있는 분야이다. 다만 의학을 전공한 연구자가 할 수 있다면 매우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기초의학이 융복합을 위한 준비가 잘 되어 있는지가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부분이다.

연구란 호기심 가득한 연구자, 연구시설 및 연구비의 삼박자가 잘 맞을 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좋은 결과를 내기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연구비는 연구자의 호기심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통계적으로 각 나라의 R&D 예산을 비교하는 것으로, 그 나라의 연구에 대한 관심의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초연구에 투자하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왜 기초연구에 투자를 하여야 하는가? 이러한 점들이 기초연구로서 기초의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정책의 기본질문이 될 것이며 이에 대하여는 분명한 답이 있다.

기초의학이 융복합을 통하여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초의학이 탄탄해져야 하기에 다음의 점들을 생각해 본다.

◇기초연구로서 기초의학의 중요성에 대한 정확한 인식= 기초연구의 중요성에 대하여는 미국 NSF를 탄생시킨 Vannevar Bush가 1945년 Franklin Roosevelt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인 “Science, the Endless Frontier”에서 언급된 기초과학에 대한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초연구란 무엇인가? 기초연구자는 모르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동기부여가 되어있다.

기초연구자의 탐구가 새로운 지식을 찾아내면 미지의 세계를 흐르는 강의 원천을 찾아낸 것과 같은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진실을 탐구하고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는 것이 기초연구자의 목표이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기초연구는 실질적인 성과에 대한 생각없이 수행되며 모든 기초연구자가 연구를 함에 있어 실질적 응용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다.

기초연구는 자연의 법칙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그 목표로 하므로 이러한 지식은 실질적이고 중요한 수많은 질문 하나하나에 대하여 완벽하고 특정한 답을 주지는 못하지만, 답을 구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을 제공해준다.

반면에 응용연구는 구체적이고 완벽한 답을 찾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수행된다. 그런 의미에서 기초연구는 응용연구에 비하여 답답한 느낌을 주며 당장 필요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이런 답답함으로 기초연구를 오랫동안 무시한다면 산업의 발전은 결국에는 정체되고 만다. 왜냐하면 기초연구의 특징은 생산적인 발전을 가져오는 다양한 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시대적으로 중요한 발견들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실험연구에서 얻어졌으며 통계적으로도 매우 중요하고 유용한 발견들은 기초연구를 하는 중에 이루어졌으나 실제로 어떠한 기초연구도 그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지는 못하였다.

창의적인 기초연구는 새로운 지식을 창출한다. 이러한 지식은 과학을 이용한 경제적 성장을 제공하며 실질적 응용을 위한 자본을 형성할 수 있어 오늘날 기초연구가 기술발전의 원동력임은 더욱 분명해졌다.

이와 같이 실질적인 목표에 대한 인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과학자들은 지식의 창출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위대한 발견이 결국에는 인류의 복지에 가장 크게 공헌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믿음은 확인되었다.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특정한 실용적 목적 없이 수행된 기초연구가 절대로 비실질적인 연구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기초연구가 즉시 활용 가능한가에 대하여는 기회의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석유를 찾기 위해 많은 시추를 시도하여 실패하지만 통계적으로는 결국 단 한 번의 성공적인 시추로 많은 이익을 얻게 된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기초연구는 언제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가장 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투자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기초연구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2015년에 발표한 미국혁신을 위한 전략(A strategy for American innovation) 보고서는 혁신에 필요한 구성요소에 대한 투자에 대하여 기초연구에 대한 세계최고 수준의 투자를 하겠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기초연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기초연구를 하는 연구진의 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민간기업 연구에 대한 특별한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대학과 기업이 기초연구에 전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보고서의 서론에서는 미국이 세계의 과학계를 이끌어 왔으며 많은 나라들은 미국이 만들어낸 기초과학 연구의 결과를 이용한 부가적인 산업의 창출에 몰두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미국의 혁신은 범세계적인 기초과학의 선도자의 역할을 유지하고 미래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라고 하였다.

또한 미국의 경제학자들도 지속적으로 혁신과 기술의 발전이 경제성장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뜻을 같이 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은 기초과학연구에 대한 선도자의 위치를 고수함으로써 세계경제를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이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한 답을 주지도 못하는 기초연구에 매달리는 이유는 기초연구가 빠른 답을 주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주 분명하게 큰 보상을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의학분야도 마찬가지이며 기초의학에 대한 투자도 대단하다. 미국정부는 미국국립보건원(NIH)에 미국 전체 R&D예산의 22%를 할당하고 의학분야 R&D에 대한 전권을 맡긴다.

즉 미국 의학분야 R&D의 사령탑인 셈이다. NIH에서는 기초의학연구, 중개연구, 임상연구 등을 총괄하며 주요 질병에 대한 센터 그리고 기초의학 연구인력에 대한 총괄도 하고 있다.

이제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면서 이미 밝혀진 사실에 대한 활용능력은 인간에 지하여 인공지능(AI)이 월등하기에 이미 지금까지 밝혀진 수많은 의학적 기초연구결과에 대한 활용 정도를 Dr. Watson과 비교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럴수록 새로운 의학적 지식의 창출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의 창조력은 아직까지 인간에 비하여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직 가능성은 있다. 우리 정부도 미래의학을 선도하기 위한 준비를 하려 한다면 기초의학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기초의학연구를 포함한 의학관련 연구에 대한 사령탑의 필요성= 우리나라의 의학연구의 현황을 종합적으로 알기가 어렵다. 특히 기초의학에 투자되는 연구비를 별도로 분류하여 찾아보려 해도 쉽지가 않다. 이는 우리나라 의학연구가 사령탑이 없이 일반과학연구에 포함되어 각 부처에서 나름대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며, 의학을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혼란스럽다.

의학연구의 사령탑이 없다는 것은 정부의 의학연구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문제점으로는 아무 부서나 생각해서 의학연구를 할 수 있는 정부, 유행에 따라 각 부처별로 시시각각 변하는 의학관련 연구예산 등 예산의 규모도 문제이지만 의학연구의 방향성을 잡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의학연구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되는데, 가장 쉽게는 의학연구의 세계적 리더인 미국과 비교해 보면 문제점은 쉽게 알 수가 있다.

미국은 국립보건원(NIH)이 의학연구를 총괄 지휘하고 있으며, 미국의 의학연구비는 전체 R&D의 22%를 차지하여 7.9%를 차지하는 일반과학의 3배에 달하는 정부의 R&D 투자를 받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정부의 의학연구 특히 기초의학에 대한 개념은 없다고 생각한다. 의학을 전공하고 임상의사의 길을 접고 의학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만으로 기초의학의 길에 들어선 수많았던 기초의학자들을 어찌 활용하여 기초의학을 발전시킬까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우리나라의 기초의학분야는 이제 회복불능의 내리막길에 접어든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다.

기초의학의 붕괴는 의료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의학발전의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제안은 이미 발표된 많은 연구보고서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여기서 반복하지 않더라고 의학연구에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정부는 이제라도 의학연구의 사령탑을 만들고 방향성을 제시하고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부디 정부가 의학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금이라도 의학연구의 사령탑을 구성하여 미래의 의학연구를 발전시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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