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품질 병원정보시스템 보급 열악

백롱민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연구부원장

정밀의료는 개인의 유전정보와 생활습관 정보를 바탕으로 최적화된 맞춤형 진단 및 치료를 제공하는 헬스케어 패러다임으로, 2015년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연두교서(State of the Union Address)에서 발표한 ‘정밀의료추진계획(PMI; Precision Medicine Initiative)’을 통해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는 2001년 처음 인간 유전체를 해독한 이후 꾸준히 쌓아 온 인간유전체에 대한 많은 연구 성과와 88.3%에 달하는 전자건강기록 보급률에 바탕을 두고 미국이 자신 있게 미래의 새로운 헬스케어 패러다임으로 제시한 것이다. 미국은 이미 2009년에 경제적ㆍ임상적 건전성을 위한 ‘건강정보 기술법(HITECH)’을 제정하고 ‘의미 있는 정보 활용(MU; Meaningful Use)’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도입하며 관련 예산으로 약 360억 달러(약 39조 4992억원)를 배정하는 등 전자건강기록 보급에 전력투구 했다.

정밀의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유전체 데이터를 처리하는 정보처리 능력뿐만 아니라, 환자의 임상정보와 생활습관정보를 신뢰할 수 있는 틀 안에 기록하여 통합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때 필수적인 도구가 바로 전자건강기록 또는 병원정보시스템인데, 이는 정밀의료 제공을 위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하는 기능과 유전체 및 생활습관 데이터를 통합 연계할 수 있는 기능을 담당하는 시스템으로 정밀의료 실현을 위한 필수 인프라이다.

최근 병원정보시스템의 빅데이터 분석 기능으로 인식되고 있는 ‘집단기반 건강관리 (Population Health Management)’는 의료진이 지정한 집단(혹은 환자군)의 건강관리 상태를 한 눈에 파악하여 충족되지 못한 필수의료(care gap)를 발견하고, 환자를 위험군별로 분류하여 각 군별로 최적의 의료개입을 달성하게 하는 기능이다.

보건의료 분야에서 큰 화두로 부각되고 있는 ‘가치기반 지불제도(Valuebased Purchasing)’와 ‘성과기반 지불체계(Pay for Performance)’를 실현하기 위해 집단기반 건강관리는 반드시 필요한 기능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현재 미국 유수의 의료정보시스템 개발 회사들은 빅데이터 분석 기반의 집단기반 건강관리 기능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정밀의료 실현을 위한 고품질의 병원정보시스템 보급은 아직 열악한 상황이다. 안정성, 상호 운용성, 기능성, 보안성 등에 대한 인증을 기반으로 한 국가적 차원의 병원정보시스템 수준 향상이 필요하며, 관련 국제 표준에 대한 이해와 도입을 촉진하여 다양한 벤더의 의료정보 애플리케이션간 상호호환 가능한 개방형 생태계가 갖춰져야 할 필요가 있다.

2015년 중앙대학교 의료보안연구소에서 국내 의료기관 150곳을 대상으로 조사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병원의 60%가 의료정보시스템 도입의 가장 큰 장애물로 예산부족을 꼽았다. 개별 의료기관이 고품질의 의료정보시스템을 도입하여 정밀의료를 위한 인프라를 갖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책적 지원 방안이 함께 고려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미국의 의료정보 및 헬스케어 빅데이터, 인공지능(AI)과 관련한 가장 큰 규모의 북미의료정보경영학회(HIMSS; Healthcare Information and Management Systems Society)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약 35%의 의료기관에서 앞으로 2년 이내, 50% 이상의 의료기관에서는 5년 이내에 인공지능을 활용한 의료정보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인공지능 도입이 가장 필요한 영역으로는 △집단기반 건강관리 △임상의사 결정 지원(Clinical Decision Support System; CDSS) △진단 및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 순으로 수요가 높았고, 병원정보시스템과 더불어 빅데이터 분석을 위한 인공지능 기술이 정밀의료 실현에 핵심적인 주요 기술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대부분의 떠오르는 기술들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을 채택하는 과정에는 몇 가지 장벽이 존재한다. 이들 중 주요 시사점은 AI 기술이 의료 영역으로 접목되는 과정에서 아직 시간이 필요하고, 임상 데이터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필요함에 따라 즉각적인 요구사항 충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CDSS의 경우에는 앞으로 유전체 데이터와 개인 생활습관 데이터를 통합하여 맞춤 진단 및 치료를 지원할 수 있는 기능을 개발함에 따라서 각 데이터별 의료적인 이해, 지식과 판단에 대한 임상적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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