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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국가책임제, ‘치매와의 전쟁’의 데자뷔

 빠른 고령화로 치매 환자가 급증하며 많은 가정이 고통에 신음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치매는 여전히 개별 가정의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17년 현재 전국의 치매환자는 72만4000여명에 달한다. 개인이 지불한 진료비와 간호비, 국가의 노인장기요양보험 지출 등을 합친 치매 관리비용은 2015년 기준 연간 13조2000억원(환자 1인당 2033만원)으로 2030년엔 34조3000억원, 2050년엔 106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수년간 이어지는 비용과 간병 부담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의 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치매 환자와 가족들은 새 정부의 정책 변화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치매국가책임제’ 공약을 내걸었다. ‘치매국가책임제’란 지역사회에 치매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치매 의료비 90% 건강보험 적용 등 사각지대에 놓인 치매질환자들에 대한 공공 지원 방안이다.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치매 질환에 대한 사회적 제도 확립의 필요성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관계자는 “대통령의 장모가 치매를 앓아 치매가족들의 고통을 몸소 느낀 만큼 경선 후보 시절부터 틀을 잡고 전면에 내세운 공약”이라며 “그 이름도 대통령이 직접 지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치매는 다른 질환과 달리 환자 본인의 인간 존엄성도 무너지고 생존까지도 위협받을 뿐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고통받는 심각한 질환”이라며 이 공약의 중요성을 직접 알렸다.

홍성익 부국장

 치매국가책임제는 △치매지원센터 확대 △치매안심병원 설립 △노인장기요양보험 본인부담 상한제 도입 △치매 의료비 90% 건강보험 적용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치매 문제를 개별 가정 차원이 아닌 국가 돌봄 차원으로 해결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전국에 치매전문요양병원이 부족한 현실을 고려해 치매전문병원 설립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제도가 정착되면 치매 병원, 치료 지원 인력 등 관련 산업 규모도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장기요양보험 본인부담상한제는 소득수준에 따라 상한액을 두고 상한액을 초과한 진료비는 환급해주는 제도다. 건강보험료의 부과체계를 일원화시켜 공정성과 수익구조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치매치료비 지원 재정을 확보한다는 청사진이다. 관건은 재원이다. 이와 관련, 대선캠프에서 복지공약을 담당한 관계자는 “치매지원센터는 일반회계 예산을 조정해 2022년까지 2600억원 정도를 투입해 증설할 것”이라며 “다른 공약은 건강보험재정에서 연 5000억원, 장기요양보험재정에서 연 300억원을 마련해 지원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치매안심국가’가 실현되려면 집권 초기에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로드맵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수혜자의 부담 없이 무상으로 베푸는 사회보장 성격이어서 의미가 더욱 크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10년 가까이 치매관리종합계획이 실행돼 왔지만 재원 등의 문제로 여전히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탓이다.

 이명박 정부 때 제2대 보건복지부 수장을 역임한 전재희 전(前) 장관(이하 ‘C장관’)은 2008년 9월 19일 ‘제1회 치매극복의 날’이자 ‘제14회 세계치매의 날’(9월 21일)을 앞두고 ‘치매와의 전쟁’에 ‘출사표(出師表)’를 던지고 치매노인에 대해 국가가 직접 나서서 종합적․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제1차 국가치매관리종합대책’을 깜짝 발표했다. C 전 장관이 그해 9월 필자를 포함한 출입기자간담회에서 “가난의 대물림을 끊고 가족의 마음으로 국민의 건강을 보살피며 모든 국민이 보다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사실을 되돌아보면 당시에나, 지금이나 ‘치매와의 전쟁’은 국민의 건강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절박한 현안이다. C 전 장관이 ‘치매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에 당시 정부는 장기요양보험 대상자 확대, 재가서비스 확대 등을 담은 ‘제2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13~2015년)’을 수립하고 치매관리에 대한 국가 개입을 본격화하고 있지만, 치매 관련 전문가들은 아직까지도 정부의 치매정책이 ‘예방’보다는 ‘복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최근 선진국에서는 치매예방 및 건강증진정책 사업을 통해 치매 유병률이 줄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치매예방 등의 정책이 부족해 치매 환자가 증가할 것이라는 통계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치매관리정책이 투자 대비 효율성을 높이려면 향후 치매예방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요양병원의 난립에 따른 예산의 효율성 제고 등 한국 실정에 맞는 치매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차하면 그간의 치매관련 정책들의 경과를 지켜볼 때, 미흡한 부분들을 보완하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치매국가책임제’도 ‘치매와의 전쟁’에 실패한 이명박 정부 때의 ‘데자뷔(Deja-vu)’를 겪게 될 것이라는 비관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치매는 환자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의 생활을 피폐하게 만들기에 예방과 초기검진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대표적인 치매예방수칙은 일반 국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치매 조기검진과 치료를 받지 않거나 못 받는 노인들이 많다. 이에 치매 예방과 검진치료 사업을 동시에 강화하고 이를 위한 인력과 예산을 대폭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령이나 치매, 중풍 환자들을 위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만큼 치매국가책임제와 관련된 ‘치매관리종합대책’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정부와 사회가 함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도 2015년 3월 18일 ‘치매와의 전쟁’에 나섰다. WHO는 치매를 ‘인류가 당면한 주요 건강 위협요소’로 규정하고 전 세계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김기웅 중앙치매센터장은 “치매는 예방으로 절반을, 검진과 치료로 나머지 절반을 극복할 수 있다”며 “고령화에 대비해 장기적인 관점으로 치매국가책임제를 끌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치매환자 문제는 각 가정이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다. 보다 더 적극적인 대책을 통해 공론화하고 우리 사회가 치매환자와 그 가족이 겪는 고통을 떠안아야 한다. 고령화 시대의 노인정책은 선제적이어야만 그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홍성익 기자  hongsi@bo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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