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30일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정신질환자의 인권 보호 및 복지 서비스 제공을 위한 개정 ‘정신건강보건법’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가 마찰을 빛고 있다.

이상만 편집국장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20년 만에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제도가 개편되는 것으로 정신질환자의 인권보호제도가 한 단계 더 발전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한다. 반면 의료계에서는 정신질환자의 비자의 입원(강제입원) 절차가 엄격해지면서 오히려 환자들이 치료받을 권리를 훼손당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특히 전국에 입원중인 8만여 환자의 절반가량이 개정 법 적용으로 지역사회에 적절한 보호 기반이 구축돼 있지 않은 시점에서 강제퇴원 조치 될 것임을 예고하고 나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환자의 인권보호 강화를 근간으로 하는 정부의 법 개정 취지에 대해 찬성해 왔던 의료계가 이 처럼 집단으로 참여 거부를 선언하면서 강력 반발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강제입원 요건의 비현실화다.

개정된 법에 의하면 정신질환자의 비자의적 입원 유지를 위해서는 기존 1명에서 2명의 정신과 의사로부터 입원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 것도 1인은 전체 정신병원 중에서 3%에 불과한 국립병원 또는 지정병원 소속 의사가 포함되어야 한다. 따라서 연간 십 수 만건의 입원 적정성을 심사하려면 많은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한다. 사전 철저한 준비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부는 충분한 대책 없이 법안을 확정했다. 의료계의 반감이 큰 이유다.

결국 업무의 상당수는 민간병원 정신과 의사들이 담당해야 하는데 일상 업무로도 벅찬 정신과 의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녹록치 않다. 정부는 올해 국립정신병원에 공중보건의를 배치(10명)해 해결하겠다는 복안이지만 이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된다. 더구나 환자를 직접 진료한 베테랑 전문의가 ‘입원 필요’라고 내린 결론을 갓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한 공중보건의가 심사하는 것도 아이러니 하다.

개정 ‘정신건강보건법’은 강제입원의 대상에 반드시 ‘자신 또는 타인을 해칠 위험이 있는 경우’라고 규정해 놓고 있는데 실제로 강제입원의 대상이 되는 정신질환자들의 대부분은 본인의 병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진단을 위해 환자를 병원에 데려오는 것조차 어려워 질 수 있다. 의료계에서는 이 조항이 오히려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훼손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그 대안으로 입원 전 사법부(또는 준사법 기관) 판단에 의한 입원 제도 도입을 주장한다. 공권력의 도움을 받아 치료 거부 환자에 대한 개입이 용이해지고, 입원 기준이나 해석을 둘러싼 인권 침해 논란도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강제입원을 위한 보호자 요건을 까다롭게 할 이유도 없어진다고 한다. 외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볼 필요도 있다.

다행히도 정부는 개정 ‘정신건강보건법’의 미비점에 대해 인정하고 법 시행 후 빠른 시일내 보완하겠다는 방침이다. 심사에 참여하는 민간병원 정신과 의사들에게도 환자수 감소에 따른 손실 보전 차원은 아니지만 그에 합당한 수가를 보전해 주는 지원책도 마련 중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새 규정에 의해 기존에 비자의적으로 입원해 있던 환자들도 법 시행 1개월 후인 6월30일부터는 새 규정을 적용 받게 되어 상당수 환자들은 강제 퇴원조치가 불가피 하다.

개정 ‘정신건강보건법’이 환자의 인권보호라는 포장만 그럴듯한 법안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가 의료계를 협력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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