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국민을 감염 병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의료기관의 감염병 시설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개정 ‘의료법시행규칙’을 지난 2월3일 공포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이번 시규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아마도 지난 2015년 예상치 못한 메르스 사태로 전 국민이 큰 혼란과 고통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만 해도 활발한 해외 진출 등으로 의료 강국이라는 자부심이 강했던 터라 메르스로 입은 마음의 상처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정부도 이러한 심각성을 인식해 국가 감염병 관리 체계 강화에 모든 역량을 쏟았다. 그 결과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질병관리본부의 차관급 격상과 전담부서 설치, 의료기관 시설 기준 강화 등 감염관리 체계 선진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이상만 편집국장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정부가 공포한 의료기관의 감염병 시설 기준 강화다. 이번 시규에는 지난 메르스 사태 당시 감염병 예방의 가장 취약점으로 지적되어온 다인실 구조의 ‘병실의 밀집화 현상’과 감염병 환자의 안전진료를 위한 ‘음압격리병실 부족’ 등에 대한 구체적인 개선책을 담았다. 이 규정에 따라 기존 의료기관들은 2018년 말까지, 그리고 신증설 의료기관은 즉시 적용된다는 점에서 이젠 감염병 관리 선진화 책임은 시설 기준을 강화해야 하는 병원계 몫으로 남게 됐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감염 예방 선진화 로드맵에 대해 그 중심축에 있는 병원계가 반발하는 모양새를 보여 매우 우려스럽다. 병원계는 각종 감염병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시책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를 표명하면서도 막대한 비용이 드는 시설 개선사업에 대해선 의료기관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다며 정부의 무대책에 성토하는 분위기다.

물론 정부가 개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병상의 벽에서부터의 이격 거리 조정 및 신·증측시 환자당 의무 확보 면적 등에 대해 어느 정도 병원계 주장을 수용하긴 했지만 정작 필요로 하는 일선 의료기관들의 바람은 방관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의료기관 시설 개선 사업은 적어도 공적 개념으로 봐야한다는 것이 병원계의 시각이다.

실제로 감염병 시설기준 강화로 인해 전국 대부분의 병원들은 대대적인 공사가 불가피하게 됐다. 이미 저수가 체제 및 인력난으로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병원의 상당수는 개정 시설 기준에 맞추기 위해선 병원을 재건축 수준으로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 곳도 적지 않다고 한다. 더욱이 병상 간격 조정으로 병상수가 10~20% 정도 줄어들면서 의료기관의 경영 악화는 불가피 하다.

지난 메르스 사태 때 막대한 재정적 손실까지 감수해야 했던 의료기관 입장에서 보면 입원료 현실화 및 장기 저리 융자를 주장하는 심정도 헤아릴 만하다. 과거 정부 차원의 융자사업이 있었던 만큼 이번에도 현실적인 지원책 마련이 요구된다.

아무튼 이번 정부의 감염병 관리체계 선진화 방안이 기관 인증평가 등 규제의 수단으로만 활용되기 보다는 국가방역체계 확립이라는 보다 큰 틀에서 모든 의료인들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