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만 편집국장

지난 20년 가까이 우리나라 병원정책 및 경영연구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온 재단법인 한국병원경영연구원이 존폐의 기로에 섰다. 아직 결론 난 것은 아니지만 해산 쪽에 무게가 실려 우려의 시각이 크다.

한국병원경영연구원이 이처럼 해산이라는 위기에 내몰린 것은 자체적인 연구 역량이 부족한데다 낮은 재정 자립도 때문이다. 1999년 대한병원협회가 5억 원을 출연해 재단법인으로 출범한 이 연구원은 최근 들어 전체 운영비의 70~80% 정도인 4억 원 가량을 매년 병원협회에서 연구용역 형태로 지원받아 왔다. 지난해 말까지 협회로부터 지원받은 누적 연구용역비가 50억 원을 넘어서는 등 사실상 병원협회의 산하기구로 존재하고 기능해 왔다. 그러나 병협 내부에선 이처럼 막대한 연구비 지원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불만이 쌓여 왔다.

결국 지난해 5월 취임한 홍정용 병협 회장은 연구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있는데다 협회의 재정난까지 겹치자 연구원에 대한 연구용역 전면 지원중단을 선언하고 사실상 결별수순을 밟았다. 그러나 협회의 용역(지원)은 연구원의 존폐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우려와 잡음도 적지 않다. 그러다보니 협회 주변에서는 차선책이라도 강구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신중론도 있다.

그 배경에는 그동안 연구원이 협회에만 의지하여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책임도 크지만 한편으론 연구원의 이사장과 원장 등이 병협과 독립된 책임 경영체제로 운영돼 온 것이 아니라 병협 회장이 새로 취임 할 때마다 자리나누기 식 인사로 채워지곤 했다는 점에서 일말의 책임이 협회에도 있다는 얘기다.

또한 연구원이 문을 닫을 경우 야기될 플러스와 마이너스 효과에 대해서도 철저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병원계의 종주단체인 병원협회는 지난 2009년 협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정책선도와 병원 선진화로 의료강국을 실현하겠다.'는 2020 비전을 선포했다. 그 당시는 글로벌 의료강국 도약을 위해 ‘정책 개발에 힘을 쏟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러나 지금 보면 ‘정책’이 우선 순위에서 한참 멀어진 느낌이다. 또한 지난해 “보건의료 정책을 선도해 나가겠다”며 병협을 중심으로 보건의료계 인사들이 참여해 ‘보건의료 포럼’이 출범했지만 이 역시 병원협회의 재정지원 철회로 활동이 멈춰진 상태다.

이런 상황을 놓고 볼 때 한국병원경영연구원의 존폐문제는 재정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정책을 선도하겠다는 집행부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연일 빅데이터가 쏟아지고,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 첨단 ICT 기술이 중심이 되는 사회, 즉 다가올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고 병원계를 대표하는 정책단체로서 위상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라도 독립된 연구기관은 필요하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배경이다.

이에 병협은 한국병원경영연구원에 대한 복지부의 예정된 감사가 종료되면 연구원의 새 이사진에서 제안된 안을 놓고 숙고하여 최종 결론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그 시나리오에는 연구원을 존속시키면서 내부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과 병협의 재정 부담을 초래하는 연구원을 해산하고 제3의 외부기관에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방안, 그리고 규모를 축소해 병협 직속의 병원경영연구소를 신설해 운영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해법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병원 경영과 관련한 정책 연구를 협회가 끌고나갈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원칙을 정하고 보면 방법은 그 뒤의 문제일 수 있다. 협회의 합목적적인 문제해결능력이 새삼 주목된다. (이상만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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