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전문지식과 술기, 자율 규제 기능을 가진 집단을 전문직(profession)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전문직으로 의사와 법률가, 성직자들이 있다. 이들은 자율적으로 윤리기준을 만들어 지키는 역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율적 윤리기준은 사회가 전문직의 독점적 특권과 권위를 인정해주는 근거가 된다. 이들 전문가 집단은 전문직 행위지침(Guideline of Professional Conduct)을 만들어 지켜가고 있다.

의사들의 경우 의사윤리강령(Code of Ethics)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 지키는 의사윤리지침(Ethics Guideline)과 진료표준(Practice Standard)이 대표적인 전문직 행위 지침이다.

우리나라에 전문직 개념이 도입된 것은 개화기인 약 130년 전 의료선교사들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전문직에 대한 구체적인 철학과 개념이 제대로 교육되고 정립되는 과정이 없었다. 전문지식과 의기술의 발전만 이루어져 왔다. 환자의 자율성과 환자의 고통을 공감할 줄 아는 철학적 의사, 공공의 선과 사회적 책무를 소명으로 생각하는 의사가 만들어지지 못했다.

단지 경제적으로 안정된 직업으로 전락했다. 또 그런 의사들이 후배의사들을 교육하는 상황이 벌어져 왔다. 이런 역사적 결함과 사회 시민의식이 성숙하지 못한 상황 때문에 한국의사들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법에 의한 과도한 타율적 간섭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 의사들은 자신들의 자유와 자율을 보장해 달라고 주장하며 억울해 한다. 여기에는 전문가주의를 의도적으로 배격하고 관치 중심의 의료정책을 펼쳐온 제도적인 문제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의사들이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을 간과하는 것이 있다. 책임 없는 자율은 없다는 사실이다. 의사의 자율성은 철저한 자율 규제를 통한 자기 통제를 통해서만 보장받는 것인데, 의사면허만 있으면 존경받고 저절로 보장되어져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전문가 집단에게 타율이 아닌 자율이 보장되려면 외부에서 보기에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운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 지켜야만 외부의 간섭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집단 자율 보장 받으려면

200여년 전 영국에서 의사이자 철학자인 토마스 퍼시벌(Thomas Percival, 1740~1804)이 ‘의료윤리 a Code of Medical Ethics’를 발간했을 때 영국의 왕실의사들은 ‘신사는 명문화된 윤리기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냉대했고, 평민의사들은 ‘자신들을 통제하려는 불순한 의도’라며 외면했다고 한다. 하지만 깨어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동료의사들과의 수많은 격렬한 논쟁과 논의 속에 1858년 GMC(General Medical Council)를 탄생시켰고, Good medical practice(모범의료행위지침)라는 것을 만들어 진료에 필요한 진료표준과 기준들을 제공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도 의료윤리를 접하는 정서가 200년 전 영국의사들과 너무나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자율규제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정착되기까지 많은 갈등의 시간과 교육이 필요할 것 같다.

지금 대한민국 의사들에게는 외부의 간섭을 막고 전문직으로서 자율성을 높이기 위한 개혁 작업이 매우 시급한 상황이다. 대한의사협회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작업을 소개하는 시간이 2016년 12월 16일 있었다. 대한민국 의료역사에 한 페이지를 이룰 작품을 가지고 공청회를 열었다. 2006년 이후 개정하지 못하고 있던 윤리강령과 윤리지침 개정안을 소개한 자리였다.

이번 준비된 개정안의 특징은 첫째, 2006년 삭제되었거나 없었던 전문직 윤리 조항들이 부활되거나 만들어졌고 둘째, 의사로서 알아야 하고 지켜야 할 전문직윤리, 임상윤리, 생명윤리에 관한 부분들을 각 장으로 잘 구분하였다. 셋째, 전문직 윤리부분에서 환자에 대한 윤리와 동료의사에 대한 윤리부분이 잘 정리되었고, 마지막으로 임상윤리와 생명윤리에 관한 사항들도 의과학의 발달에 따라 요구되는 윤리적 기준을 적절하게 명시해 놓았다.

1년 넘게 개정작업에 참여한 각 분들의 노고에 찬사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바라기는 공청회를 통해 개진된 많은 의견들이 잘 반영되어 더욱 믿음이 가는 강령과 지침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개정이 확정되고 난 후에도 시대와 의료 환경에 걸맞는 정기적인(regularly) 개정 작업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어떤 문제가 발생된 후 보완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국사례 등을 잘 연구하여 선제적인(proactive) 개정 작업을 통해 타율적 간섭을 막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전문과 의료윤리지침 공유 필요

각 전문과별 학회 및 의사회에서도 자신들의 영역에 필요한 세분화된(specific) 전문과별 행위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의료윤리지침에 대한 공유 작업이 교육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의과대학교육(BME)과 졸업 후 전공의 교육(PGME)과정 그리고 전문직업성 평생개발(CPD)과 같은 연수교육과정을 통해 동시에 같은 내용으로 잘 전달되어져야 한다.

지난 일이지만 2006년 의사윤리강령과 윤리지침 개정은 책임 없는 자율을 주장한 대한민국 의료계의 흑역사였다. 의사들이 꼭 지켜야 할 전문직 윤리 조항이 삭제되거나 폐지된 결과로 과도한 법의 간섭이 들어오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런 뼈아픈 교훈을 절대 잊지 말아야겠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때라는 격언으로 위로를 삼고 남은 보완 작업과 대의원 인준 과정이 잘 이루어져 의사들이 스스로 어깨를 펴고 내세울 수 있는 번듯한 전문직 행위지침이 탄생하기를 소망한다.
[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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