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봉윤
대한약사회 정책위원장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하 서비스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현재 정부는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려 하고, 재계는 천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하며 총력 경주하고 있다. 명분상 서비스법은 서비스산업선진화 위원회를 만들어 기업의 연구개발 성과에 대해 세제 지원 등 혜택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서비스법에서 말하는 ‘서비스산업이란 농림어업이나 제조업 등 재화를 생산하는 산업을 제외한 경제활동에 관계되는 산업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산업을 말한다’라고 포괄 위임함으로서, 서비스산업 발전이란 명분으로 보건의료, 교육 등 공공영역으로 두어 최소한으로라도 국민보호를 해야 할 것을 이윤창출 등 자본과 산업 개발의 잣대를 들이대려는 우를 범하려 하고 있다.

보건의료는 서비스산업이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과 직접 관련이 있는 보건의료 분야까지 영리추구를 위한 사실상의 상업행위를 추구하는 것은, 최소한 인간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보호 장치인 공공성을 파괴하는 행위이자 의료민영화 도입의 시발점이다.

2012년 서비스법을 도입해 서비스 선진화 방안을 이루기 위한 정부의 실천과제는 크게 4가지였다. 외국인투자병원 도입과 의약품 약국외 판매는 도입이 완료되었고, 원격진료 허용과 약국법인 설립 허용을 주 내용으로 하는 의료서비스 선진화 방안과 1인 1개소 규제완화 도입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1인1개소 영업규제 완화를 통한 기업적 네트워크 병원 허용은 영리기업의 의료분야 진출허용을 의미한다.(1인은 개인이 아닌 법인이다)

최근 의료인 1인1개 의료기관 개설을 규정하고 있는 의료법 33조 8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사건이 헌법재판소에 회부돼 심리 중에 있다. 만에 하나 이 규정이 ‘위헌’ 판결을 받게 된다면, 법인약국 도입의 목소리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고 영리기업의 의료기관 진출은 봇물 터지듯 일어 날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서비스법의 핵심적 문제점은 의료영리화 정책을 추진하는 모태법이 될 수 있고, 더구나 보건의료와 교육 등 공공성이 중시되는 부처의 정책까지 경제발전과 이윤창출을 중시하는 기획재정부가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리병원 도입’에 대해 소관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비판적 입장(?)을 갖더라도 기획재정부의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가 이를 묵살하고 얼마든지 관련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기재부 독재법이다.

최근 금융위가 내놓은 약국·병의원 실손보험 직접청구 방안은 차치하고라도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폐지돼도 의료민영화는 불가능하다’는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원장의 기고문은 의료영리화를 추진하려는 정부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업활력제고특별법 이른바 ‘원샷법’이 2월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대해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이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원샷법은 기업의 인수·합병 등 사업 재편 관련 절차나 규제를 하나로 묶어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원샷법이 처리됨에 따라 삼성, 현대자동차, SK 등 대기업들의 지주회사 체제전환이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친재벌 경제단체들은 정치권이 원샷법에 이어 “아직 계류 중인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과 노동개혁 법안들도 서둘러 통과시켜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지난 MB정권에 이어 박근혜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과도하게 친재벌정책을 옹호한다는 점이다. 재벌을 통한 경제성장을 이끌어내 이로 인한 낙수(Trickle Down)효과를 전 국민에게 돌아가게 한다는 생각인데, 역사적으로 이를 뒷받침해주는 사회과학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작년 12월 ‘더 나은 한국을 위한 정책 보고서(Better Policy Korea)’를 통해 한국 경제에 대해 “생산성은 상위 회원국 전체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고 경제성장률이 수년 동안 감소했으며, 소득 불평등이 극대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OECD는 보고서를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 심화가 노동시장의 이중화 고착은 물론 전체 경제의 활력을 크게 손상시키고 있다고 분석하며, 한국경제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재벌 기업집단이 주도하는 수출은 내수와 고용에 대한 낙수효과를 예전처럼 못 내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지방, 제조업과 서비스업 사이의 생산성 격차가 극대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OECD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Start-up)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국이 이 제안을 모두 수용할 경우 향후 10년간 국내총생산(GDP)이 2.5% 증가할 것이라 전망했다.

전술한 바에서 알 수 있듯이 OECD 정책제언 보고서의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이 의미하는 것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려는 재벌 위주의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과는 전혀 다르다. 서비스산업 부문의 낮은 생산성은, 최근 다보스 포럼에서 화두가 된 4차 산업혁명과 연관 지어 생산성 향상을 이루어내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3D 프린팅, 바이오 공학 등을 통한 변화를 의미한다.

비록 비정규직이라도 증가시켜 실업률만 감소되면 되고, 소득불평등이 극대화 되더라도 경제 지표만 올라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가계 부채가 급증하든, 의료민영화로 공공성이 파괴되어 국민이 고통 받든 오불관언(吾不關焉, 어떤 일에 상관하지 않고 모른 체함)으로 서비스법을 도입하려는 것은 정부가 취할 행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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