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해결해야할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굳이 우선순위를 정하라면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의 극복’이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다. 그 다음은 ‘소득양극화로 인한 중산층 붕괴 극복’이며, ‘통일’ 등을 꼽고 싶다. 하지만 이 땅의 정치와 행정이 이 문제들을 국가 최우선과제로 선정하고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4년 7월 1일 보건복지부 제43대 수장에 취임한 김근태 전(前) 보건복지부장관(이하 ‘K 전 장관’)은 일찌감치 이러한 현안을 선결과제로 설정했다. K 전 장관은 취임식후 기자간담회에서 ‘파부침주’(破釜沈舟: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살아 돌아가기를 기약하지 않고 결사적으로 싸우겠다는 비유)란 고사성어로 장관직 수행 의지를 대신한다.

그는 장관 취임 이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시행 등 저출산·고령화문제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추진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K 전 장관은 취임 100일째를 맞은 그해 10월 점심시간을 이용, 과천청사 인근 관악산을 등반한 뒤, 산 밑 식당에서 닭백숙과 막걸리로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저출산·고령화 해소 등 복지정책은 과정은 신중하되 결정하면 바위처럼 밀고 나가야 한다”며 그간 장관직을 맡은 뒤 느낀 소감과 각오를 기탄없이 털어놓는다. 이어 취임 1주년을 맞은 2005년 7월 필자를 비롯한 출입기자와의 간담회에서 “통계청에서 한국 여성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1.2명으로 발표된 것에 대해 예상은 했지만 통계수치로 확인하고 보니 속이 상한다. 저출산·고령화는 우리사회의 뿌리를 흔드는 문제”라며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하겠다”고 역설하던 모습이 선연하다. K 전 장관은 “앞을 보니 사납고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가 보였다”며 “바다를 건너려면 튼튼한 배가 있어야 한다. 제도를 고치고 사회 합의를 이끌어내 사나운 파도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해 9월 1일 시행된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 따라 제1차 저출산·고령화사회기본계획(2006년~2010년)과 제2차 저출산·고령화사회기본계획(2011년~2015년)이 수립됐으며, 유시민·변재진·전재희 전 장관에 이르기까지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지속적인 정부 현안과제로 추진된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 진영, 문형표 전 장관 때에는 ‘저출산·고령화 극복 대책’에 대해 어인 일인지 소극적으로 진행돼 왔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집권 3년차를 맞은 박근혜 대통령은 12월 10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열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198조원을 투입해 시행할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지금부터 5년이 인구문제 골든타임이라는 인식과 인구문제가 단순히 보육정책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같이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지난해 1.21명인 합계출산율을 2020년까지 1.5명으로 끌어올려 ‘초저출산(1.3명 이하)’을 탈피한다는 게 목표다. 그렇지만 쉬운 목표가 아니다. 정부는 지난 1~2차 계획기간에 150조원을 쏟아 부었지만 출산율은 1.08명에서 1.21명으로 0.13명밖에 오르지 않았다. 진단과 처방에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 10월에 내놓은 기본계획 시안이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아서인지 이번에 일부 보완했다. 그럼에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은 여전하다. 정부의 기본계획 어디를 봐도 13만5000가구의 임대주택과 37만개의 일자리를 제공하면 합계출산율이 지금보다 0.29명 올라갈 수 있는지 설명이 나와 있지 않다. 과학적으로 치열하게 접근하는 대신 물량 위주로 정책을 나열한 채 목표만 장밋빛으로 제시했다는 생각이 든다.

저출산의 원인을 양육부담으로 진단한 것부터가 그렇다. 이에 따라 국가책임보육, 일·가정 양립 제도 등을 도입했지만, 출산율은 물론 결혼율도 높이지 못했다. 25~34세 여성혼인율은 2005년 60.4%에서 2014년엔 43.7%로 추락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3차 계획에서 그간의 초점이던 ‘보육지원’이 아니라 ‘결혼장려’로 방향을 튼 것은 당연하다. 그런 인식이라면 청와대 등에 보다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할 것이고, 전처럼 보건복지부가 주관하고 복지전문가들이 총출동하는 방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저출산·고령화’의 문제는 결국 ‘중산층 붕괴’가 문제의 핵심이어서 복지부 중심, 복지전문가 중심으로는 해결이 안되기 때문이다. 인구문제는 더 이상 복지문제가 아니라 경제문제라는 점이 강력히 부각되고 있다. ‘중산층 복원’이 인구문제의 해법이다. 본질적으로는 언제 중산층에서 탈락할지 모르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한 결혼도 늦어지고 아이도 덜 낳게 되는 것이다. 국가적인 역량을 총동원해야 할 뿐 아니라 주거, 일자리, 보육 등을 종합적으로 풀기 위해선 보다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저출산 해결을 위해 10년간 123조원을 투입하고도 별 성과를 내지 못한 전철을 앞으로 5년간 밟아서는 안 된다.

고(故) ‘K 전 장관’이 첫 시동을 건 ‘저출산·고령화 극복’ 대책은 미래진행형 과제이다. 저출산·고령화는 국가적 재앙을 몰고 올 중대 이슈다. 중국은 35년간 유지해온 한 자녀 정책을 폐기하고 모든 가정에 자녀 2명을 허용했고, 일본도 저출산과 아베노믹스 전담 장관을 두는 등 대책마련에 몸부림치고 있다. 안이한 처방으로 대응하다가는 인구절벽으로 경제 활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장관 직무수행 최우선 해결과제로 삼았던 ‘K 전 장관’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초대의장을 역임하며 민주주의운동에 투신했다. 1986년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에 연루돼 고문 기술자인 이근안에게 고문을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이후 그는 로버트 케네디재단이 수여하는 인권상을 수상하고 3선 국회의원을 거쳤다.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씨병을 앓다 지난 2011년 12월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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