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균
서울 성북·이정균내과의원장
과거 농경사회에서 ‘메뚜기’는 재앙이었지만 웰빙이 강조되면서 최근에는 ‘메뚜기 쌀’이 청정농업의 총아가 되었다. 이 뿐이랴, 식용으로서의 수요가 많아 대량사육의 시대가 열리는 등 해충의 오명을 벗어 난지 오래다.

가을이 저물어 가고 있다. 농경사회, 농경문화 속에서 가장 친숙한 곤충은 메뚜기였다. 동심(童心)을 이끄는 풀숲의 높이뛰기 선수들은 해충 취급을 받아왔다. 지금 농촌 들녘에서는 유기농과 건강한 논의 생태지표가 되면서, 논밭 어디서나, 걸어가다 보면 메뚜기는 풀썩 튀어 오른다. 아련한 동심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우리 국토의 논과 밭의 비율은 점점 줄어가고 있다. 묵혀진 휴경농토는 주말농장 등으로 변하고 생태공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메뚜기도 과거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메뚜기’는 ‘산에서 뛰는 벌레’의 다른 이름이다. 곤충 분류학에서는 메뚜기목(orthpoetra)의 메뚜기 아목(caelifera)에 속하는 종류들이다. 한국에는 60여 종의 메뚜기가 살고 있다. 가을 황금벌판엔 사마귀, 메뚜기, 귀뚜라미, 풀무치, 방울벌레, 쌕새기, 콩중이, 팥중이가 짧은 가을이 아쉬워 펄쩍펄쩍 뛰어 날아든다.

사마귀는 황갈색 또는 녹색 몸 빛깔을 하고 더듬이가 다른 곤충보다 길다. 논과 풀밭에 살고 있다. 앞다리는 포획다리다. 딱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은 창을 든 전사와 비교된다. 사마귀는 한자로 당랑(螳螂)이라 부른다. 이슬을 먹으려는 매미를 뒤에서 사마귀가 노리는 줄을 모르고 사마귀 또한 자기를 노리는 황작(黃雀)이 있음을 모른다는 옛이야기에서 눈앞의 욕심에만 눈이 어두워 덤비면 곧 해를 입는 다는 뜻을 지닌 당랑재후(螳螂在後) 또는 당랑규선(螳螂窺蟬)이란 사자성어의 주인공이다.

방울벌레는 귀뚜라미과다.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낸다. 8월에 성충이 되어 수풀 밑에 살고 잡초 잎을 먹고 산다. 야행성이다. 귀뚜라미처럼 가을에 울어 곱고 방울소리를 읊어 주니 금종충(金鐘蟲)이란 이름을 얻었다. 풀밭, 정원등에 사는 귀뚜라미는 지상 생활자다. 식물성 먹이를 먹으며, 잡식성인 것도 있다. 수컷의 앞날개엔 발음기가 발달해 있다. 귀뚜라미 우는 밤, 달밤이면 더욱 가을을 느끼게 되고, 노스탈자의 주인공이다.

풀무치는 메뚜기과, 누리와 비슷하다. 8~9월에 발생하여 양지 바른 풀밭황지에 살면서 잡초를 먹고 산다. 화본과(禾本科)식물의 해충이다. 전 세계 공통종이다. 누리는 메뚜기과에 속하는 곤충이다. 황충(蝗蟲)이는 누리의 다른 이름이고, 풀무치와 비슷하다. 몸길이는 45~65㎜쯤 된다. 풀무치와 달리 군생(群生)하면서 큰 떼를 지어 하늘을 날아 이동하는 비황(飛蝗)형이다. 누리가 이동할 때면 그 떼에 해가 가리어지고, 그 떼가 앉는 곳에서는 순식간에 땅위의 풀이 하나도 없게 된다고 한다. 농작물의 대 해충, 몹시 두려워하는 것이고, 비황(飛蝗), 황충(蝗蟲)으로 부른다. 누리는 세상, 세대라는 뜻을 지닌다. IT정보화시대, 누리꾼의 힘은 그 얼마나 강한가.

쌕새기는 여치과, 여치보다는 작다. 습기 있는 초원이나 논에 서식한다. 콩중이와 팥중이는 메뚜기과다. 콩중이, 팥중이는 착하고 성실하여 콩중이는 복을 받고, 게으르고 못된 팥중이는 벌을 받는다. 콩쥐팥쥐이야기의 새로운 근대 버전이다.

귀뚜라미는 수컷이 음악소리를 낸다. 2,400여 종이 알려졌다. 수컷을 한 쪽 앞날개에 있는 마찰기구를 다른 쪽 날개에 있는 50~250개의 이빨로 된 치열에 문질러서 소리를 낸다. 마찰음을 내도 빈도는 1초 동안에 마찰하는 이빨의 수에 달려 있다. 큰 귀뚜라미는 1초당 1,500회, 작은 귀뚜라미에서는 1만 회나 된다. 암컷을 부르는 소리가 가장 흔한 귀뚜라미음이다. 교배음(交配音)은 암컷을 짝짓기로 유도하며, 다른 수컷을 쫓아낼 때는 전투음(戰鬪音)을 발사한다. 왕귀뚜라미, 집귀뚜라미는 마당이나 건물 안에서 볼 수 있다. 귀뚜라미 울고 집안으로 들어서 살면 우리 인간들에게 겨울 준비를 하라고 재촉한다며, 게으르지 말고 앞날을 생각하며 위험에 대비하라고 이르는듯하다는 시경(詩經) 속의 시 ‘실솔( 蟋蟀)’은 경고를 하고 있다.

귀뚜라미는 행운이나 영리함을 뜻하고 귀뚜라미를 해치면 불운이 찾아온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수컷 귀뚜라미를 우리에 넣어 소리를 들으며, 귀뚜라미의 싸움을 보는 것이 몇 백 년 내려오는 오락이다.

가을 황금들판 벼메뚜기는 벼 수확하는 논에 많다. 유기농 농사지역에 많다. ‘메뚜기쌀’이 탄생한다. 밥맛 좋다. 잘 팔린다. 강아지풀에 벼메뚜기, 목덜미 줄줄이 꿰어 들판을 돌아다니던 어린 시절 추억이 되살아난다. 프라이팬에 달달 볶아 먹거나, 닭장에 넣어 닭들의 먹이로 던져주던 즐거운 가을 추억이다. 이제 메뚜기볶음은 술안주, 뷔페식 요리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메뚜기를 대량 사육하는 농가도 생겼다. 값싼 중국, 북한산의 메뚜기 수입은 국산이 그 수요를 감당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메뚜기는 해충의 오명을 벗고 메뚜기가 갉아먹은 벼 잎은 생태계 건강유지 증명서류다.

무덤가 갈색의 칙칙한 메뚜기, 송장메뚜기라 하여 잡지 않았다. 송장메뚜기는 특정한 종이 아니다. 송장메뚜기로 오인했던 칙칙한 갈색빛깔의 메뚜기는 우리 인간에게 격언을 남겼다. ‘송장메뚜기 같다’ 미움 바치는 사람이 주제넘게 나서서 날뛸 때에 이르는 말이다.

방아 찧는 흉내, 도마뱀전략의 방아깨비, 날아갈 때 ‘따다다닥~’ ‘따닥깨비’는 손바닥 크기만큼 커서 방아 잘 찧는 방아깨비 그 암놈은 크고 수놈은 암컷에 비해 훨씬 작고 빼빼 말랐다. 풀무치는 잡으려면 재빨리 하늘로 도망가는 커다랗고 힘센 메뚜기다. 순하나 큰 무리 짓는 습성, 그것은 예날 ‘누리’ 가깝다. 삼국사기의 황충(蝗蟲)이야기, 과거 메뚜기는 농경사회의 큰 재앙이었다. 오뉴월 성했던 메뚜기, 가을을 넘기면서 모두 사라진다.

‘메뚜기도 오뉴월 한철이다.’ 한창 운이 트고 번영할 때를 말함이다. 그러니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한다. 메뚜기 떼는 중동, 호주, 중국 사막지대에서 우기에 발생한다.

193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품 ‘대지’ The Good Earth>는 1931년 미국여류작가 퍼얼 벅이 지은 장편소설이다. 주인공 왕룡(王龍)집안과 중국사회의 역사를 그 사실주의적 표현으로 평명(平明)에게 묘사한 작품이다.

이제 메뚜기는 ‘메뚜기’ 쌀을 만들어낸다. ‘지리산 메뚜기 쌀’ ‘섬진강 메뚜기 쌀’ ‘청자골 메뚜기 쌀’ ‘산청 메뚜기 쌀’ 등은 메뚜기와 풍년 새우, 우렁이, 미꾸라지, 개구리, 반딧불이 공생과 함께 청정 농업의 총아가 되어가고 있다. 메뚜기가 번성하여 수확량이 다소 적어져도 쌀 맛이 좋아지니, 앞으로 방울토마토, 애호박, 고추, 딸기, 참다래도 전적으로 청정 유기농업으로 전환하여 농사를 지으려는 움직임도 커져 가고 있다.
[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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