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평론가

의료윤리에 대한 관심과 시대적 요구가 높아지면서 의료윤리와 전문직업성 함양을 위해 공부하고 고민하는 단체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의료윤리에 대해 학문적인 연구를 하는 학회와 오피니언 리더들의 노력의 결과들이다. 자발적인 연구 모임인 ‘의료윤리연구회’가 2010년 9월 6일 개원의들이 중심이 되어 발족되어 기성 의사들이 의과대학에서 배워보지 못한 의료윤리에 관한 내용들을 매월 모여 공부하고 동료의사들과 공유하고 있다.

이에 힘을 얻은 의료윤리학회에서도 보다 심층적이고 집중적인 의료윤리 교육과정을 위해 ‘의료윤리교실’을 발족시켰다. 의료윤리교실은 의료윤리학회장을 역임한 고윤석 전 회장이 초대 교장을 역임한 후 현재 허대석 교수가 회장을 맡아 이끌고 있다. 두 교수의 역량과 통찰력이 워낙 뛰어나기에 앞으로 많은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가 모아진다.

지난 10월 16일 의료윤리교실 주최로 ‘의사 국가시험 대비 새 의료윤리 교과서의 활용’을 주제로 ‘전국 의과대학 의료윤리 교육자 워크숍’이 있었다. 지난 2년간 의과대학의 공통학습 목표에 보다 근접한 내용을 담은 새 의료윤리 교과서를 만들어 소개하고 활용방법에 대한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의료윤리학’과 ‘전공의를 위한 의료윤리’ 사례와 해설집 등을 발행하여 공통적으로 습득해야 할 의료윤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제시하고 사례분석을 통해 역량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온 의료윤리학회가 이러한 노력을 더 발전시킨 것이다.

그동안 의료계에서는 의료윤리의 함양과 의식고취를 위해 국가고시에 의료윤리부분이 들어가야 한다는 줄기찬 요구가 있어왔고,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의료윤리 시험이 국가시험에 들어가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비록 국가시험에 나오는 의료윤리 관련 문제비율이 400문제 중 단 1문제(일본 500문제 중 10문제, 대만 80문제 중 3문제)에 불과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문제 숫자도 많아지고 시험 방법도 주관식이나 구두시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진화해 갈 것으로 기대된다.

이날 교과서 활용과 국가고시에 대한 많은 의견들이 개진되었다고 한다. 특히 이 토론에 참여하신 분들이 의료윤리교육에 직접 참여하시는 분들이시기에 문제점에 대한 분명한 대안이 제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런데 알려진 내용은 다소 실망스러운 의견들이었다. 대안 제시보다는 문제제기 수준의 발언들이고, 매 번 듣던 주장들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의료윤리란 의료현장에서 의사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올바른 윤리적인 판단을 통해 의술을 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발표된 내용처럼 교수 분들이 어려워하는 의료윤리 문제를 국가고시문제에 꼭 내야만 하는지 의문이 든다. 국가고시란 꼭 알아야할 지식을 알고 있는지 판단하는 과정인데, 시험 당락과 점수 변별력을 위해 어려운 문제를 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해당 교수들의 마음을 압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꼭 알아야 할 지식이 포함된 것이라면 문제가 쉬우면 안 되는지 묻고 싶다. 굳이 배배 꼬인 문제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법을 어기는 것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안은 법률적 기준을 외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의료윤리학자간에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첨예한 의료현장의 문제들과 의료행위가 윤리적으로는 합당하다고 판단되지만 규정과 법률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안은 국가고시에 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첨단 의료기술의 도입에 따라 발생하는 의료윤리의 문제들은 의료윤리 전문가들이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제공해야 하는 것이지, 학생들에게 해답을 요구할 수 없다. 국가고시에 들어갈 부분과 들어가기 힘든 부분을 구별하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의료윤리를 어렵고 두렵게 느끼게 하면 할수록 의료윤리를 배우고 체화해야 할 학생들과 동료의사들은 지레 겁을 먹고 멀리 하게 된다. 의료윤리가 의사의 삶에서 생명력을 가지게 하려면 교육하는 분들이 먼저 교육의 목표와 우선순위 그리고 적용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주어야 할 것이다.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성찰하고 깨달아 윤리적인 판단을 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어렵게 가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어렵게 만든 의료윤리 교과서가 교육현장에서 쉽고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제 몫을 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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