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노력으로 보상받아야 할 아름다운 황혼기. 하지만 ‘치매(癡呆)’가 찾아오면 황혼기는 순식간에 암흑으로 물들게 된다. 본인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도 적지 않은 피해를 주는 치매노인은 결국 요양시설로 보내지며 가족과의 생이별이라는 쓸쓸한 말로를 겪는다. 대부분의 치매노인과 그 가족이 겪고 있는 비극적 시나리오다. 다행인 것은 이처럼 비참한 치매노인의 말년이 꼭 정해져있는 각본은 아니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치매 증상을 조기에 발견해 중증치매로 발전하는 것을 늦추고, 가족들에게 관련 지식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황혼기의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2년 치매 유병률 조사’에 따르면 2011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치매 유병률은 9.18%로 환자 수는 54만1000명으로 추정되며 치매 유병률은 2030년에는 약 127만 명, 2050년에는 약 271만 명으로 매 20년마다 약 2배씩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향후 치매의 사회적 비용은 암, 심장질환, 뇌졸중 세 가지 질병을 모두 합한 비용을 초과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다. 특히, 치매로 인한 사회․경제적 국가 총비용은 2010년 기준 연간 8조7000억원이며, 10년마다 두 배씩 증가해 오는 2020년 18조9000억원, 2030년 38조9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명박 정부 때 제2대 보건복지부 수장을 역임한 전재희 전(前) 장관(이하 ‘C장관’)은 2008년 9월 19일 ‘제1회 치매극복의 날’이자 ‘제14회 세계치매의 날’(9월 21일)을 앞두고 ‘치매와의 전쟁’에 ‘출사표(出師表)’를 던지고 치매노인에 대해 국가가 직접 나서서 종합적․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제1차 국가치매관리종합대책’을 깜짝 발표했다. 그해 7월부터 시행 중인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와 함께 ‘어렵고 힘든 노인’을 위한 사회복지를 강화한다는 취지에 공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특히, 수혜자의 부담 없이 무상으로 베푸는 사회보장 성격이어서 의미가 더욱 크다. C 전 장관이 그해 9월 필자를 포한한 출입기자간담회에서 “가난의 대물림을 끊고 가족의 마음으로 국민의 건강을 보살피며 모든 국민이 보다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사실을 되돌아보면 ‘치매와의 전쟁’은 국민의 건강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절박한 현안이다.

C 전 장관이 ‘치매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에 정부는 장기요양보험 대상자 확대, 재가서비스 확대 등을 담은 ‘제2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13~2015년)’을 수립하고 치매관리에 대한 국가 개입을 본격화하고 있지만, 치매 관련 전문가들은 아직까지도 정부의 치매정책이 ‘예방’보다는 ‘복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치매 발생 이후의 관리와 치매발생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강구해야 궁극적으로 치매 환자 수를 줄이고 치매에 대한 관리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는데 정부 계획은 예방 측면에서 미흡한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단적인 게 적극적인 치매 예방치료를 위한 첨단검사기법(‘FDG-PET·불화디옥시포도당 양전자단층촬영’)이 건강보험 비급여 대상으로 평균 비용이 60만~120만원(복지부 고시 70만원)에 이르러 거의 ‘무용지물’이 된 사례다. 현재 치매의 대증요법(치매의 진행 속도를 늦추고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은 물론이고 임상시험 중인 치료제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도 조기에 치매를 발견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선진국에서는 치매예방 및 건강증진정책 사업을 통해 치매 유병률이 줄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치매예방 등의 정책이 부족해 치매 환자가 증가할 것이라는 통계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치매관리정책이 투자 대비 효율성을 높이려면 향후 치매예방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요양병원의 난립에 따른 예산의 효율성 제고 등 한국 실정에 맞는 치매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차하면 치매환자 관리 실패로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치매 환자를 둔 가족의 간호 부담 확대는 저출산으로 가뜩이나 심각해지는 노동력 부족을 심화시킬 것이다. 정부도 그 심각성을 인식해 범국가적 치매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2013년부터 시행한 ‘제2차 국가치매관리종합계획'으로 조기검진 비율이 높아졌다. 치매특별등급 제도 시행 이후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경증 치매환자(5등급) 1만456명이 지난해 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통합 치매관리 전달체계가 확립되지 않았고 치매상담센터의 전담자도 1~2명에 불과하다. 치매 상담요원의 40%는 타 업무를 겸하고 있다. 지난해 말 국회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치매특별등급 도입으로 대상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반면, 경증 치매 노인을 돌볼 요양보호사 교육과 보호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지적됐다.

고령이나 치매, 중풍 환자들을 위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만큼 ‘치매관리 종합대책’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정부와 사회가 함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오죽하면 치매를 앓다가 2004년 타계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아들도 “아버지는 위대한 전도사가 아니었다. 가족들에게 절망과 좌절을 안겨다주는 거추장스러운 환자였다”고 했을까. 그의 ‘반어적 사부곡(思父曲)’은 치매와의 전쟁의 한 단면이다. 마침 세계보건기구(WHO)도 올해 3월 18일 ‘치매와의 전쟁’에 나섰다. WHO는 치매를 ‘인류가 당면한 주요 건강 위협요소’로 규정하고 전 세계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치매환자 문제는 각 가정이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다. 보다 더 적극적인 대책을 통해 공론화하고 우리 사회가 치매환자와 그 가족이 겪는 고통을 떠안아야 한다. 고령화 시대의 노인정책은 선제적이어야만 그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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