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우여곡절 끝에 오송(五松) 생명과학단지(이하 ‘오송단지’)가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었다. 세계적인 의료바이오산업의 메카로 떠오른 ‘오송단지’ 구상은 20여 년 전인 1994년 김영삼 정부(문민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상목 당시 보건사회부장관이 우리나라의 보건의료·과학기술을 선진국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면서 구체화됐다. 서 전(前) 장관은 1994년 11월 29일 보건의료분야 세계화 추진계획을 담은 ‘보건과학기술 혁신방안’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서 장관은 이날 보고에서 “보건의료분야에서 정부의 육성지원 없이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문제를 외국기술에 의존하는 심각한 사태가 우려된다”고 전제, 보건의료산업을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성장 주도산업으로 육성하고 식품의약품의 안전관리를 획기적으로 개선키 위해 보건과학기술 혁신방안을 마련했다고 역설한다.

당초 추진방안 대로라면 1997년 충북 청원군 강외면 오송 신도시에 990만㎡ 규모의 보건의료과학단지가 조성돼 국립보건연구원, 국립식품의약품안전관리원, 국립의료원, 한국한의학연구소, 한국의료관리연구원, 한국식품위생연구원 등 보사부 산하 연구기관을 비롯한 30여개의 민·관 관련연구시설과 보건관련 산업체가 입주했어야 했다. 물론 이러한 오송단지는 서 장관 시절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산업 육성을 기치로 신설된 초대 기술협력관인 송재성 전 보건복지부차관(이하 S차관)이 팔을 걷어 부치고 보건의료과학단지의 실질적인 밑그림을 그렸다는 데 복지부 내에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S차관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산업이 선진국에 많이 뒤떨어져 있기 때문에 집적단지인 생명과학단지를 만들어서 선택적 집중화를 전략으로 삼았다”며 “7곳의 후보지 가운데 특허창출, 임상시험 지원 능력 등을 감안해 오송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전국을 항공 촬영하며 부지를 물색하던 중 전 국토에서 접근성이 가장 좋고 인재확보 측면에서 유리한 충북 청원군 강외면 오송리에 990만㎡ 규모의 부지가 최적지로 뽑혔다고 회고한다. 대덕 연구단지가 지척에 있다는 점도 호재로 작용했다.

이처럼 오송단지 밑그림의 주역인 S차관은 보건복지부 내에서 최고의 일꾼으로 평가받는다. 필자는 S차관에 대해 복지부 내부는 물론 전 중앙부처 공무원들에게 기획력과 추진력을 겸비한 ‘제갈공명’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건강보험재정 파탄과 의약분업 혼란이라는 유탄에 맞아 징계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대기발령이라는 아픔을 겪기도 했으나, 2002년 12월 복지부 기초생활심의관으로 복귀 후, 4개월만인 2003년 3월 사회복지정책실장으로 승진하면서 재기했다. 그는 복지부 산하 국책기관 오송 이전을 총괄 기획, 추진했다. 이후 정부는 1997년 2월 9988억원을 들여 2010년까지 사업을 완료하겠다는 보건의료과학단지 조성추진 계획을 재수립했고 충북 오송을 국가산업단지 바이오보건의료 특화단지로 지정한다. 이어 2001년 1월 국책기관 이전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사업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나서 2003년 10월에야 오송단지 조성사업을 착수하기에 이르렀다.

2007년 11월 식약청 등 오송단지로 이전할 6대 보건의료 국책기관을 확정 짓고 신축사업에 착공해 이듬해 10월 토지조성 및 도로정비 등 오송단지 기반조성공사가 마무리됐다. 사업이 지연되면서 중도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입주기업이 예상보다 줄어들어 규모가 910만㎡에서 463만7000㎡로 줄었다. 또 초안에 첨단 의료기기를 개발할 수 있는 우수인력 공급을 위해 공대를 졸업하고 의학을 공부하는 의공학대학원 설립키로 했지만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폐기되기도 했다. 의공학대학원은 삼성측과 협의하다 중단되고 카이스트 이전 계획도 검토됐지만 모두 재정 문제로 무위로 돌아갔다.

마침내 2010년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청과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의 6대 보건의료 국책기관이 이전했다. 6대 국책기관 이전은 2001년 4월 기본계획을 세운 이후 10년 만에 이뤄졌다. 총사업비도 8621억원에 달하고 토지공사와 국토부, 환경부, 충청북도가 모두 동원된 제법 거대한 이사다.

이 정도로 큰 사업이 특별법도 없이 꾸준히 추진돼 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오송단지는 세종시와 달리 큰 논란 없이 대통령 재가만으로 사업이 진행됐다. 법적인 구속력이나 강제사항이 없었음에도 대규모 사업이 무리 없이 진행된 것은 순전히 복지부의 열정 덕분이다. 관련 공무원들의 노력도 노력이거니와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오송단지에 근무하기로 선뜻 결정한 국책기관의 임직원들도 오송단지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책기관의 이전에 난항이 있었다면 기업 유치도 어려웠으리라는 점에서 불편을 무릅쓴 2400여 명의 연구원과 행정원들이 오송단지의 주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오송단지로 대변되는 바이오밸리 조성에 국책기관의 임직원들이 힘을 보태면서 지역발전을 중심축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2010년 11월 1일 KTX 오송역이 개통됐다. 오송역의 등장으로 오송은 충북선을 포함해 국가철도망 ‘X축’의 중심이자 전국 2시간 이내 생활권의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됐다. 또 올해 4월에는 KTX 호남선도 완공됐다. 오송역이 경부와 호남선의 분기역이기 때문에 동북아 물류의 중심으로 발전될 것이 예상되는 등 입지 여건이 매우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차관이 필자에게 “싱가포르의 바이오폴리스, 미국의 샌디에이고, 일본의 고베 등이 대표적인 생명과학단지로 조성된 도시이다. 특히, 보다 효율적인 환경 조성을 위해 이들 국가를 벤치마킹해 세계 최고의 생명과학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오송단지가 조성되면 보건의료 분야의 혁신적 환경 제공으로 국민과 기업 모두가 혜택을 얻을 것이며, 국가는 신성장 엔진으로 국가 경제, 국민 복지, 기업 경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오송단지가 명실상부 세계적인 바이오산업 거점으로 부상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미래의 성장동력 중심으로 자리잡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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