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평론가
2014년 10월 고리 원전 인근에 거주하는 한 여성이 “원전에서 노출된 방사선의 영향으로 갑상선암이 발병했다”며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있었다. 법원은 “원고의 갑상선암 발생이 발전소에서 방출된 방사선외 다른 원인 있다고 볼 수 있는 뚜렷한 자료가 없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원전-갑상선암 인과관계 없다!= 이와 관련된 전문가 의견이 제시되는 모임이 지난 5월 6일 ‘원전 주변 주민과 갑상선암에 관한 과학적 분석’이란 주제로 열렸다.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핵의학 등 방사선 및 의료 전문가들은 “의학적 인과관계가 없다”며, 1심의 판결과 정면 배치되는 의견을 내 놓았다.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다른 흥미로운 의견이기에 남은 재판과정을 통해 보다 정확하고 공정한 결론이 도출되었으면 한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사례가 미국에서 있었다. 1980년 초 미국 웨스트 컴브리아 핵재처리공장에서 다수의 백혈병 환자들이 발생했다. 이들은 ‘핵재처리공장에서 방사선에 노출되어 백혈병이 걸린 것’이라고 주장을 했다.

하지만 실제 조사결과 공장에서 발생되는 방사선의 양이 너무 미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핵재처리공장에서 발생되는 방사선양의 400배가 되어야 백혈병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백혈병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회이론가 주장과 실제 상당수 달라= 현대의학의 이슈 중의 하나가 사회이론이다. 사회이론가들은 식생활과 환경오염, 가난이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얼핏 들으면 다 맞는 이야기 같다. 매스컴에서 그리고 많은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이들이 주장하는 것과 연구결과는 상당히 달랐다. 제임스 르파누는 <현대의학의 역사>에서 사회이론의 세 가지 요소를 △생활방식(음식) △오염 △가난의 역할로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사회이론 주장중에서 현재 실제적으로 인정할 만한 것은 담배에 의한 폐암의 증가이외는 아무것도 인과관계가 성립한 것이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사회이론가들은 특정음식의 문제로 심장병이 많이 발생한다며 식생활 개선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기 위해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특정 음식의 섭취를 제한하거나 콜레스테롤 저하약을 복용한 그룹에서 심장병이 줄었다는 결과를 얻지 못 했다. 많은 매스컴의 관심을 이끌 수는 있었지만, 엄청난 연구비만 낭비하고 콜레스테롤 저하약을 생산하는 제약회사의 배만 불려주고 말았다.

상수도에 잔류하는 PCB(폴리염화비닐) 때문에 정자수가 감소한다고 오염으로 인한 병의 발생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연산’ 에스트로겐 함유 과일과 야채가 약 40여종에 이르고, 자연산 과일과 채소로 섭취하는 에스트로겐 양이 상수도를 통해 섭취하는 PCB의 양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정자수 감소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가난이 자살과 질병 발생에 중요한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동의 사고와 젊은 남성의 자살률이 높은 것 이외의 원인으로 가난이 질병과 사망률을 높이는 원인으로 할 만한 근거가 없음을 알게 된다.

◇냉철한 이성으로 합리적 판단 필요= 제임스 르 파누는 사회이론가들을 두고 “그들은 두 눈을 오로지 먼 지평선에 두고 그들의 목표가 옳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했지만, 그들이 실패한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한다”고 꼬집고 있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바로 냉철한 이성과 지성을 사용한 합리적인 판단력이 필요하다.

2008년 광우병 파동을 겪으며 수 조원의 국민재산을 허공에 날린 뼈아픈 과거를 기억해 본다.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다 죽을 것이라는 허황된 주장에, 눈 먼 기관차처럼 거리로 나와 시간과 돈과 국력을 낭비한 부끄러운 역사가 있었다. 그 당시 왜 의사협회는 전문가 단체로서 의견을 국민들에게 제시하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광우병 파동과 같은 일이 다시 재현되지 않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때에 맞는 소신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 남아있는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번 원자력-방사선 전문학계 워크숍에서 제시된 전문가들의 주장은 사회에 던지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된다.

과학문명의 발달과 함께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많은 원인들이 밝혀지고 유해 원인을 없애거나 피하기 위한 노력이 일고 있다. 하지만 막연한 두려움으로 우리의 삶이 위축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뢰밭을 지나가려면 지뢰를 찾으라는 말이 있다. 지뢰가 묻혀있다고 경고를 하는 것을 넘어 지뢰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주는 것은 전문가의 임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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