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굳이 우선순위를 정하라면 필자의 사견으로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의 변화’, ‘소득양극화로 인한 중산층 붕괴’다. 정치와 행정이 이를 국가 최우선 과제로 선정하고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출산․고령화문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보다도 더 심각한 국가존립의 문제인데도 여․야의 정치적인 행태는 진보와 보수로 사상논쟁만 하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국민들은 먹고살기에 바빠 인생철학적인 생각을 할 여유도 없고, 많은 20대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어 5포(연애·결혼·출산·취업·주택)상태로 희망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저출산․고령화문제가 오래 전부터 예상된 위기였지만 폐해가 닥칠 때까지 정부와 국민 모두 ‘나쁜 진실’을 일부러 외면해 오늘과 같은 상황을 맞게 됐다. 지난 20년간 일본 청년의 1/3이 사라진 예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하는데, 우리 위정자들은 대책은 세우지 않고 허구한 날 복지정책으로 싸움만 하고 있다.

특히, 지금부터 향후 5년이 인구문제 골든타임이라는 인식과 저출산 시대에 알맞은 인구정책이 단순히 보육정책 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정치인들이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정책방향의 대수술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저출산 현상의 문제점을 간파하고 인구정책을 아젠다(주제)로 설정, 산파역(産婆役)을 자임한 이는 참여정부 초대 장관을 역임한 김화중 보건복지부장관(제42대, 이하 K장관)이다. K장관은 2003년 2월 27일 취임사에서 “노인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아동의 건전 육성, 저출산 시대에 알맞은 새로운 인구정책을 수립 추진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혀 전 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이 같은 K장관의 정책 방향에 힘입어 정부는 2005년 저출산 대책을 국가정책으로 채택했으며, 2006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수립해 보육중심의 정책을 전개했다. 이후 2011년부터는 보육 확대 및 일․가정 양립제도 개선 등을 포함한 제2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올 9월말까지 3차 계획을 수립해 인구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게 된다. 이처럼 출산율 높이기를 주요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K장관은 “아이 낳는 것보다 더 큰 애국은 없다”고 역설하고 나섰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2005년 참여정부 시절 저출산․고령화 현상에 대해 종합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신설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대통령 직속에서 복지부 소속으로 격하된 데 이어, 2012년 5월 다시 대통령 직속으로 돌아왔지만 사실상 이렇다 할 활동이 없다. 이 위원회가 열린 것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장인 박근혜 대통령이 올 2월 6일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주재하고, 위원회 위원과 일반 국민, 전문가, 해외 대사 등과 함께 토론하며 대응책에 대해 논의한 시간을 가진 게 전부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은 2001년부터 2014년까지 합계출산율이 1.3명(’14년 1.2명)으로 일본의 1.4명보다 낮으며 세계 평균출산율 2.5명의 절반 수준이다. 현재인구를 유지하기 위해선 적어도 출산율이 2.1명 이상은 돼야 한다. 15~64세의 생산가능인구는 2017년 감소세로 돌아서고, 2018년에는 고령화 비율(전체인구대비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14%를 돌파해 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저출산․고령화는 베이비붐세대(1955~63년)가 노인세대에 진입하는 2020년을 기점으로 극심해질 것이 확실시된다. 고령사회에 진입한 지 불과 8년 만인 2026년 초고령사회에 돌입하고, 2031년에는 총인구가 감소하는 등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인구 절벽시대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불명예스럽게도 국제사회에서 저출산 문제가 언급될 때마다 한국(남한)이 항상 빠짐없이 등장한다. 일찍이 2006년 영국 옥스퍼드대 문화인류학을 연구하는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인구가 소멸되는 1호국가로 한국을 지명했으며, 세계적인 경제예측가인 미국의 해리 덴트 박사도 신간 ‘2018 인구절벽이 온다, The Demographic Cliff’에서 “한국의 가장 위험한 시기는 지금부터 2016년까지이고 그리고 2018년과 2019년”이라고 일갈했다. 즉, 한국이 ‘인구 절벽’ 위기에 몰렸으며, 저출산 문제가 ‘벼랑 끝에 섰다’는 진단이다.

늦게나마 정부가 2016~2020년을 인구 위기에 대응하는 마지막 ‘골든타임’으로 정하고 합계출산율을 1.4명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뼈대는 초혼 연령을 낮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신혼부부의 주거비 부담을 줄이고, 고용률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지난 1960~70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고 정관수술을 장려하는 등 산아제한 운동을 펼쳤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아기 낳기 운동’ 출산장려 정책을 펼쳐야 할 상황이다. 출산을 하더라도 요즘 사회에선 돈이 없으면 부모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 중․고생이 있는 가정에서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살인적인’ 사교육비 때문에 가계가 부도날 판이다. 죽기로 공부시켜 대학에 보내도 최고 천만원에 육박하는 등록금 마련에 부모들의 뼛골은 남아나질 않는다. 그뿐인가. 졸업해도 취직이 안 돼 껴안고 살아야 한다. 세상이 이러한데 ‘애 낳는 게 애국’이라는 K장관의 발언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들릴 법도 하다.

자녀를 둔 부모로서 저출산 대책을 교육과 취업, 주택대책과 함께 현실적인 방안과 연계시켜 주기를 정부에 바란다. K장관이 자신의 역량으로는 출산율을 높이기가 불가능하다고 고백하던 모습이 필자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저출산 문제를 생각하면 등에 활활 타는 불을 지고 있는 기분”이라며,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하던 모습이…. K장관의 절박한 심정을 박근혜 대통령이 헤아려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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