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보건복지정책을 책임져야 할 수장이 부처 장악은 고사하고, 무슨 말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정신없이 떠들어대는 ‘횡설수설(橫說竪說)’ 발언으로 인해 장관으로서의 품위와 권위를 스스로 떨어뜨리고 물러난 경우가 있다.

횡설수설이란 ‘말에 조리와 순서가 없다’는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지만 본래는 긍정적 의미로 사용됐다. 횡설수설은 중국 ‘장자(莊子) 잡편(雜篇) 서무귀(徐無鬼)’에 나오는 ‘횡설종설(橫說從說)’에서 유래된 말이다. 장자에서 나오는 ‘횡설종설’이 종(從)자가 같은 의미인 수(竪)자로 쓰여 횡설수설로 바뀌었으며, 그 의미도 박학다식하며 말을 잘한다는 의미에서, 지금에는 ‘이 소리 하다가 느닷없이 저 소리를 해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 쓰는 말이 됐다. 이처럼 말뜻이 달라진 것은 횡(橫)자가 지닌 여러 가지 뜻 때문이다. 횡(橫)은 ‘가로’라는 뜻이 있지만, 동시에 ‘멋대로, 함부로’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필자는 이 같이 한미 쇠고기 수입 협상 시점에 ‘횡설수설’ 하다가 보건복지가족부장관 자리에서 5개월 만에 물러난 ‘을(乙)’장관을 상기해본다. 을장관은 지난 2008년 5월 중순, 대변인실이나 기자실에 사전예고 없이 복지부 갑(甲) 국장과 기자들의 오찬장에 불쑥 찾아왔다. 필자가 앉아 있는 건너편에 을장관이 자리했다. 을장관 옆에는 그 시대 정권과 비판적 견해를 보인 ‘가․나․다’ 언론사 소속 기자가 포진했다. ‘나’ 신문기자가 대뜸 물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농림수산식품부 책임이 아니라는 말이 있던데 장관께서는 어찌 생각하는 지요?”

이 말이 끝나자마자 을장관은 기다렸다는 듯 “농림수산식품부가 이번에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데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번 건 농림부의 잘못이 아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통상의 문제다. 협상을 이끈 것도 분명 통상 쪽이다. (외교통상부의) 잘못을 농림부가 대신 지적 받고 있는 것이다. (제가) 합동기자회견에 농림부장관과 함께 나간 것도 대신 매 맞고 있는 사람 옆에서 함께 맞아줬다고 생각한다”는 발언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을장관은 또 한발 더 나가 “나는 지금까지 우리가 먹는 소가 30개월 미만의 소인 줄 몰랐다. 사람들이 너무 잔인해진 것 같다. 소도 엄연한 생명체인데 10년은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식의 엉뚱한 발언까지 했다. 이후 “비보도를 전제로 부담 없이 한 말이 와전된 것”이라는 복지부 측의 해명도 있었지만 수입 쇠고기와 광우병 논란에 대한 장관의 인식에 문제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을장관은 결국 다음날 국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청문회에서 이 같은 발언 때문에 여야 의원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말았다.

이날 청문회에 참가한 의원들은 을장관이 전날 기자들과 오찬 자리에서 “쇠고기 협상을 이끈 것은 분명 통상 쪽으로, (외교통상부의) 잘못을 농림수산식품부가 대신 지적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 “문제 있다”고 일제히 비판했다.

통합민주당 A의원은 을장관이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해프닝이라고 한발 물러선 데 대해 “국무위원이 기자간담회에서 외통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발언을 했으면 책임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해프닝이라고 ‘횡설수설’하고 있는데 장난치는 것이냐”고 질타했다. 여당인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B의원조차 “복지부장관은 사람의 보건과 복지를 다루는 것이지 소의 보건과 복지를 다루는 게 아니”라며 “기가 찰 일”이라고 비난했다.

이 같은 을장관의 발언이 보도돼 논란이 확대되자, 을장관은 자신의 명의로 언론사 출입기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오프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한 얘기였다”며 “특히, 쇠고기 협상과 관련한 내용은 미국 관보(官報) 오역(誤譯: 번역 착오) 실수의 아쉬움을 지적한 것이 마치 협상책임이 외교부에 있다는 의미로 와전된 것이다. 오늘 일은 해프닝으로 여겨주길 바란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가’ 복지부 출입기자는 “비보도 요구가 있었지만 명확치가 않았다. 기자단 내에서도 이후 ‘비보도를 전제로 말한 것이냐’ ‘보도할 만한 사안이냐’ 등 여러 논의를 했다. 특히, 사안의 중대성과 최대 현안에 대한 발언임을 고려할 때 보도해야 할 만한 상황이라고 최종 판단했다. 특히, 주무장관으로서 가져야 할 처신의 부적절함 등도 고려됐다”고 밝혔다.

또한 ‘다’ 기자는 “오찬 테이블에 한두 명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기자들이 정리해 보도된 김 장관 발언은) 기자들이 그렇게 들었기 때문이며, 처음부터 설왕설래 말이 많았지만 비보도 요구를 거절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출입기자들 대부분은 이 같은 을장관의 발언에 대해 ‘실언(失言: 실수로 잘못 말함 )이냐, 고언(苦言: 듣기에는 거슬리나 도움이 되는 말)이냐’를 놓고 학자 출신의 국무위원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지켰다는 ‘고언’ 쪽에 무게를 뒀다. 반면, 일부 기자들은 을장관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 경솔한 발언으로 장관으로서의 품위와 권위를 스스로 떨어뜨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중국 청나라때 편찬된 ‘전당서(全唐書) 설시(舌詩)편’에는 신중한 말의 필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입은 곧 재앙의 문’(구화지문․口禍之門)이요, 혀는 곧 몸을 자르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처신하는 곳마다 몸이 편하다.”

말은 그 말을 하는 본인의 속내를 드러내는 내시경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두 번 강조할 필요가 없다. 하물며 공인된 자는 더욱 그렇다. 그 파장이 자신의 주위사람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공개를 원칙으로 얘기했다지만 장관은 국무위원으로서 국가의 재상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말실수가 미칠 파장 정도는 최소한 알고 있어야 하며, 그러한 이유로 공개된 장소에서 발언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우리는 정치지도자의 막말 한 마디가 오랫동안 본인의 발목을 잡는 사례를 무수히 목도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말을 할 때는 신중히, 이치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처신(處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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