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봉윤
대한약사회 홍보위원장

2015년 새해 벽두부터 보건의료계는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직역 다툼에 결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선 “규제를 기요틴(단두대)에 올리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에 이어, 정부가 구랍 28일 ‘규제기요틴 과제 114건’을 확정하자 양·한방계가 들썩이고 있다.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및 보험적용 확대’가 규제기요틴 과제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사용 등은 양·한방 이원체계의 특성과 국민의 요구, 헌법재판소 결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침마련을 추진하기로 하고, 상반기 안으로 기기별 유권해석을 통해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진단·검사기기를 명확히 하고, 양방 의료행위에 대한 한의사의 보험적용 여부는 신중히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의 이러한 방침은 지난 2012년 서울중앙지검이 안압측정기, 자동안굴절검사기, 세극등현미경, 자동시야측정장비, 청력검사기 등의 의료기기를 이용해 환자를 진료한 한의사에게 기소유예 판결을 내린바 있고,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의료기기의 성능이 대폭 향상됐으며,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 없이 진단이 이뤄질 수 있다면 자격이 있는 의료인인 한의사에게 그 사용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 등 의사협회 집행부는 1월 14일 오전 복지부를 항의 방문하고 의료분야 ‘규제기요틴’ 추진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추 회장은 “이런 의료계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규제기요틴 보건의료분야 과제가 철회되거나 재논의 되지 않을 경우 의료계는 분연히 일어서 투쟁에 나설 것임을 선언한다”며, “의료의 원칙과 전문성을 무시함으로써 의료체계를 붕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자명한 정부 ‘규제기요틴’을 의사들은 ‘국민건강 지킴이’로서 강력히 반대한다”고 천명했다.

같은 날 대한한의사협회는 프레스센터 19층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문제 등을 포함한 정부의 규제 기요틴 발표에 대해 공식입장을 밝히는 가운데 일부 의료기기 사용 요구에서 더 나아가 진단기기의 ‘전면적인 사용’을 요구하고 나섰다. 김필건 한의협회장은 “의료계가 면허증 반납과 같은 행위로 국민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고 불안에 빠뜨리고 있다”며 “하지만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서 끝까지 국민 편에 서서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동일한 사안에 상반된 목소리를 내면서도 서로 국민을 위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약사회와 의협은 정부와 정치권의 대체조제 활성화 문제로 각을 세우고 있다. 정부가 대체조제 활성화 카드를 꺼내들자, 의사협회가 대체조제 활성화에 반대하며 내세운 명분은 약사들의 임의대체조제다.

의협은 “지금도 약국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임의 대체조제가 만연하고 있다”면서 “이 상황에서 대체조제를 법령으로 활성화 한다면 정부가 나서 환자를 진료한 의사의 전문성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선택분업 추진을 공론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약사회는 “약효가 동등한 약물에 대해 대체조제가 가능하도록 하고 지역처방의약품목록 제출, 처방전 2매 발행 등을 전제로 상품명 처방을 시행했는데 의사들은 환자들에 대한, 약사들에 대한 최소한의 약속과 규정조차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끊임없이 불거지고 있는 리베이트 문제는 과연 의사들의 상품명 처방 주장 의도가 무엇인지 그 진실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리베이트 수수행위가 환자와 의사간 신뢰관계를 스스로 무너뜨린 것임에도 대체조제 활성화 정책에 딴죽을 거는 것은 집단이기주의적 발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약사회는 “리베이트와 연계된 처방약의 빈번한 변경으로 약국 불용재고약은 지난 14년간 6000억원(연평균 420억원)에 이르는 등 불필요한 사회적 낭비가 초래되고 있고, 아울러 현재 국공립병원 입원환자가 사용하는 약에 대해서 동일 성분 최저가 입찰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들 병원에서 치료의 질이 떨어진다는 보고는 없다”고 강조했다.

의약분업 도입 시에도 의사들이 반대했던 중요한 명분 중 하나가 약사들의 임의조제였지만 기우로 밝혀졌다. 약사들이 대체조제를 원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불용재고약 문제이다. 임의대체조제는 기우이다.

새해 벽두부터 몰아닥친 정부의 전략(?)에 약(藥)의(醫)한(韓)의 세 직능간의 다툼이 ‘삼국지’를 읽는 것같이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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