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평론가

내과가 미달이다. 모든 의료기관에서 미달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병원에서 내과가 미달됐다.

내과 미달에 대한 이유가 분분하다. ‘원격진료 우려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전공의들의 인식 변화 때문이 아니겠냐’는 것이 중론이다. ‘무슨 과를 전공하던 수련 후 경제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 수련까지 힘들게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수련 후 진로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수련조차 힘든 것을 기피한다는 말이다. 참 현명한(?) 생각이다. 하긴 수련하기 힘들기로 말하자면 내과도 외과 못지않다.

흥미로운 것은 소아과와 산부인과의 약진이다. 앞으로도 환경이 그리 좋아질 것 같지 않은 소아과와 산부인과 약진의 비결은 의외로 그룹프랙티스였다. 소아과, 산부인과가 최근 개별 개원보다는 그룹으로 개원하는 경향이 늘어난 것이 원인이다. 경제적 보상이 없다면 그룹개원이 자기 시간도 갖고, 여행도 다니고, 또 리스크도 줄 일 수 있다고 생각 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개별 개원, 그룹개원 모두가 쉽지 않은 외과나 비뇨기과는 아직도 고전 중이다.

새로 들어온 의예과 학생들에게 의대지원 동기를 물으면 대부분 ‘성적이 됐기 때문’ 이라고 한다. ‘의대가 좋아서’ 라기보다는 성적이 좋아서 온 셈이다. 그들이 선호하는 직업의 안정성과 미래에 대한 고민은 학생들의 고민이라기보다는 부모 고민의 결과일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 것이 IMF 이후니까 거의 15년이 다 되가는 셈이다.

이렇게 입학한 학생들이 의대를 졸업하고 수련을 마친 후 이제 의료계의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우수하고 뛰어 나지만 안정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의사가 의료계의 새로운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이건 좋고 나쁘고의 문제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고 현상이다.

그런데 우리의 의료계나 의료시스템이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한 우리의 의료시스템이나 의료계는 그전 의사들의 패러다임에 맞추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내가 좋아서 의대에 들어 왔고, 안정과 편안함보다는 희생과 도전에서 보람을 찾았던 의사들이 많았다. 먹고 살 걱정 때문에 의사를 택하진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의사를 직업이 아닌 천직으로 여기던 때였다.

요새 극장가에 영화 ‘국제시장’ 열풍이 뜨겁다. 책임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는 아버지 세대의 고난을 그린 영화다. 그런 아버지세대를 자식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시대이다. “우리세대의 고통을 자식들이 겪지 않아서 다행” 이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대사처럼 우리의 의료현실이 다음세대의 고통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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