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평론가

독일에 잠깐 가있을 때 일이다. 인공신장실 담당 펠로(fellow)에게 “주말에 뭐 할 거냐”고 물었더니 “병실 당직을 선다”고 말했다. 레지던트도 있는데 펠로가 당직을 선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런데 신장센터 당직이 아니란다. 신장센터는 별도의 병원으로 독립된 건물을 가지고 있어서 외래도, 입원환자도 따로 진료하고 있었다. “그럼 어디서 당직을 서느냐”고 물으니 “순환기내과와 소화기내과가 있는 옆 건물 병원에서 당직을 선다”는 것이다. “아니 왜 남의 과, 다른 병원에서 신장내과 펠로가 당직을 서느냐”고 물었다. 뜻 밖에도 “돈 때문”이라는 대답이었다. 주말당직을 서면 돈을 많이 주기 때문에 돈이 필요한 사람은 당직을 선다는 뜻이다.

얼마 전 내년도 내과 전공의 당직 계획이 확정 되었다. 내년 3월부터는 전공의 당직이 주 80시간으로 제한된다. 여러 차례 회의 결과 총 당직만 남기고 다른 전공의는 퇴근하는 것으로 결정이 된 것이다. 여태까지는 각 과별로 당직 전공의가 있었는데 3월부터는 내과 전체 당직 전공의 1명만 남게 된다.

응급실 담당 전공의는 따로 있지만 여하튼 6시 이후에는 병원에 내과전공의가 1명밖에 없다. 내과입원환자가 수백 명인데 1명이 전체 환자를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자가가 보던 환자가 아니라면 환자에 대한 추가 처치나 상담은 불가능 하다고 봐야 한다.

병원에서는 당직스케줄과 관계없이 전공의들이 병원에 남아 있게 되면 추가 수당을 줘야 할지 모르니 전공의 숙소를 축소하고 일부만 운영하려고 할 것이다. 과를 생각해서 몰래 당직을 서 달라고 하기도 쉽지 않다. 이번 음주수술 건도 그날 당직이 아닌 전공의가 술을 마시고 병원에 있다가 생긴 일이다.

‘전공의가 노동자냐 피 교육자냐’하는 논란과 관계없이 이제 대학병원의 풍속도는 많이 바뀔 것이다. 시행 첫 해부터 칼같이 지켜지지는 않겠지만 일단 시행되면 빠르게 정착될 것이다. 그 전까지는 과 운영이 교수 중심으로 운영이 되었다면 이제는 전공의 중심으로 운영될 것이다. 회진도 전공의 퇴근시간을 고려해서 돌아야 하고, 컨퍼런스도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전문의시험 준비를 위해 일찍 손을 놓고 숙소로 올라가던 것도 어려워진다. 무노동 무임금이니까…. 논란이 많던 전공의근무 문제가 정상화(?) 되어 가고 있는 중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 또 있다. 의사국시 때문에 4학년 2학기가 없어진 학사 일정도 그렇고, 군의관 복무기간도 정상이 아니다. 사병에 비해 지나치게 길뿐만이 아니라, 4월 제대로 전공의 수련과 대학원 진학에도 문제가 있다.그렇지만 진짜 정상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왜곡되고 비틀린 의료제도와 수가체계가 아닌가 싶다. 정상인 듯 정상인 듯 하나 비정상인 의료현실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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