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의약품 시장은 아직 닫혀있다. 단정의 근거는 ‘리베이트 영업’에 있다. 리베이트 영업은 불법이다. 불법을 지속하려면 제약회사의 내부 의사결정이 폐쇄적이어야 하고, 제약회사와 의료기관간의 거래 관계는 은밀해야만 한다. 환자에게 제공되어야 할 의약품 정보 역시 제한적일 수록 좋다.

바깥 사회들과 긴밀하게 연결된 개방사회에서 기술의 혁신과 문명의 발전이 가장 빠르게 이루어짐은 통설이다. 제약산업계 역시 기술혁신을 꾀하며 글로벌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산업발전의 본류를 벗어나거나 거스르는 행위가 리베이트 영업이다. 리베이트 영업은 개방이 아닌 고립을 자초하는 일이다. 산업의 역량을 약화시키고 동력을 분산시키는 행위다.

제약-의료 간 긴장관계 조성돼 기술 및 학문 발전에 걸림돌

리베이트 영업은 산업에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직종 고유의 가치 하나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할 의사와 의료기관을 한순간에 범법자와 범법기관으로 전락시키는 일이다. 의사가 먼저 요구하고 제약기업이 이에 응해 리베이트를 주었다 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귀중한 의료자원을 잃는 엄연한 사회적 손실인 것이다.

약을 만드는 일, 더 좋은 약을 만드는 일, 새로운 약을 만드는 일에서 의사의 역할은 필수적이고 비중은 절대적이다. 리베이트 영업은 이처럼 당연하고 꼭 필요한 제약-의료 간 협력관계를 일순간 긴장관계로 돌변시킨다. 악례가 선례를 삼키게 되면 기술의 발전과 학문의 진보는 더뎌진다. 이 해악은 의료 소비자인 국민과 국민건강을 돌보는 국가에 돌아간다.

‘적발하여 처벌하는’ 정책의 다음 수순은 망신주기

리베이트 영업은 ‘적발하여 처벌하는’ 음성적 정책을 초래했다. 공정거래법에 의한 과징금 처벌로 모자라 2010년 11월부터 의료법과 약사법에 의한 행정처분과 형사처벌이 더해졌다.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꾸려지더니 급기야 오는 7월부터는 건강보험법에 의한 급여 정지 및 삭제 조치가 단행된다.

보험급여정지 처벌은 기업경영 측면에서 볼 때 그동안이 행정처분이나 형사처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벌이다. 우리나라는 단일건강보험(단일시장) 체제인데다 보험의약품 비중이 전체 의약품 시장의 80%를 육박한다. 처분일수의 과소를 떠나 급여정지는 곧 제품에 대한 사형선고와 같다. 사회적 요구를 읽어낸 국회와 정부가 ‘이래도 리베이트 영업 하겠느냐’며 산업계에 보낸 최후통첩인 셈이다.

자중지란에 의한 산업공멸 가장 경계해야

리베이트 약제 급여 정지 및 삭제 조치가 시행되면 경쟁기업 간 상호감시가 활발해질 것이다. 내부고발의 파괴력도 더 커져 확실한 경찰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대로 경쟁기업간 신고와 고발, 맞고발로 이어지며 이전투구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도 매우 크다. 이는 산업계가 공멸에 이르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글로벌 파트너들의 내민 손을 거두게 하여 글로벌 진출의 꿈을 스스로 접어버리는 꼴이다.

‘탈리베이트 영업’은 사회의 요구이자 명령이다. 급여삭제라는 강력한 제재가 끝이 아니란 것이다. ‘리베이트 영업’이 사라졌다는 확실한 징후와 정황이 나타날 때까지 정부의 시장 감시와 개입은 계속될 것이다. 의료기관 벽면마다 리베이트 기업 이름을 올려 대대적 망신을 주는 방법까지 동원될 수도 있다. 이 소모적 숨바꼭질은 끝내야 하고 해법의 열쇠는 기업이 쥐고 있다.

윤리경영 실적 생산하고 새로운 경쟁의 룰 만들어야

‘탈리베이트 영업’의 돌파구는 윤리경영과 공정경쟁뿐이다. 두 가지 모두 기업만이 할 수 있다. 윤리경영은 선언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준법경영을 아우르는 윤리규범과 실천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조직적으로 운영해야 하며 운영실적을 정기적으로 생산해야 한다. 이러한 윤리경영의 실적과 근거 생산을 통해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들고 이를 산업풍토로 발전시켜야 한다.

불공정경쟁은 손쉬운 리베이트 영업을 많은 기업들이 따라한 결과다. 공정경쟁 역시 선도 기업이 필요하다. 공정경쟁의 도구는 가격(원가), 품질, 브랜드, 서비스 등이다. 이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궁리하고, 이 도구를 활용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제도적․환경적 요인이 무엇인지 찾아내 이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경쟁의 룰이 만들어진다.

정부의 작은 보상, 윤리경영 공정경쟁에 큰 변화 가져올 것

윤리경영과 공정경쟁을 확립하는데 있어 정부가 해줘야 할 역할도 많다. 무엇보다 혁신형기업과 같이 윤리경영기업에 대해서도 작지만 다양한 보상기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윤리경영인증기업에 대한 국공립병원 우선 입찰권 부여, 기업이 자진하여 저가거래 한 일정금액을 사회공헌 포인트로 인정하는 방안 등은 기업을 변화시킬 충분한 유인이 될 것이다.

불공정 행위의 적발과 처벌에 소요되는 행정비용을 보상기전으로 전환하면 유통질서를 바로잡는 동시에 산업이미지도 개선하는 일석이조 효과가 나타난다. 민·관 합작 새로운 정책 개발이야말로 사회의 거센 요구에 뜨겁게 화답하는 길이다.

장 우 순

한국제약협회 약가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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