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된 일이다. 필자가 전공의 시절 교수님들은 병실 회진을 잘 안 했다. 어쩌다 도는 회진도 아는 환자 몇 명만 보고 휙 돌아오곤 했다. 펠로우 제도가 생기기 전이니 환자는 전공의가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전공의가 주치의가 되었다.

환자가 입원을 하면 침대마다 환자의 이름, 성별, 나이와 함께 주치의 이름이 걸린다. 그런데 주치의는 지금도 전공의 이름이다. 특진교수는 지정의라는 이름으로 따로 걸린다. 옛날과 달라진 것은 이제는 특진교수 이름이 침대마다 걸려있고 환자들은 자신의 특진교수가 누군지 안다는 점이다.

간혹 환자들은 퇴원할 때 자신들이 내는 특진비가 고스란히 특진교수에게 가는 줄로 안다. 환자 한 명당 특진비를 수십~수백만 원을 내니 환자들 생각에 어림잡아 한 달에 특진교수가 챙기는 특진비가 수천만 원을 훌쩍 넘는다‘. 도둑놈’ 소리가 절로 나온다.

왜 의사를 사람들이 도둑놈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된다. 그러니 특진교수가 회진을 좀 늦게 오거나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돈 생각이 날 수 밖에 없다. 간혹 입원 중간에 나오는 병원비에 붙어 있는 특진비를 보고 노골적으로 항의하는 환자도 있다.

의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다. 특진비 수입의 일부가 월급으로 나오는 것은 맞지만 그건 월급의 구성 중 하나일 뿐이다. 내가 환자에게 특진 신청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입원해서 나에게 치료받고, 수술 받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한 것뿐이다. 그래서 특진의가 아니고 지정의다. 특진비의 대부분은 사실 병원의 다른 직원들 월급으로 쓰이는데 왜 의사만 그 수모를 당해야 하는지 가끔 억울할 때도 있다.

병원들이 대형화되면서 모든 과들이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내과는 소화기 내과의사가 아니면 내시경을 하지 않는다. 소화기내과도 더 세분화돼서 간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는 소화기내과의사지만 내시경을 하지 않는다. 소화기내과 의사들조차 상부 위장관전공의사와 하부 소화기전공의사는 말이 같은 소화기내과 의사이지 서로 소원하게 지낸다. 이런 현상은 순환기내과나 외과, 정형외과 심지어 안과, 이비인후과에서도 흔한 일이다. 말이 같은 과지 실제 서로 하는 일이 다르다. 옛 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내과의사는 위장병이든 심장병이든 모든 내과 환자를 다 봤고, 정형외과 의사는 어깨 아픈 사람이나 허리 아픈 사람을 구별하지 않았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런데 그런 상상이 현실이 될 것 같다. 정부가 특진교수 수를 줄인다고 한다. 앞으로는 간 이식하는 외과의사가 맹장 수술도 하고, 위암 수술도 해야 할 것 같다. 특진교수를 줄이면 모든 수술은 특진교수가 할 수밖에 없다. 특진이 아닌 교수는 전공과 관계없이 환자를 볼 수 없게 되겠지. 세부전공은 이제 소용이 없게 된다. 30년 전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병실회진 갈 일도, 환자 눈치 볼 일도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대학에서는 진료수입으로 교수를 임용하거나 승진시키지 않는다. 학교에서 그렇게 재촉하는 연구와 학생들이 목말라 하는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리 걱정할 일도 또 우려할 일도 아닌 것이다.

<김형규 고대안암병원 내과 교수/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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