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신성하고 상서로운 동물로 묘사 - 하늘의 사신·제왕 출현을 알리는 영물
6·25전쟁에 참전한 영웅말‘레클리스’ - 미 버지니아주 야외공원에 동상 세워

2014년은 갑오(甲午)년이다. 새해는 띠로 보면 말의 해이고, 새해는 청마(靑馬)띠 해이다. 푸른 말은 기마(驥馬·천리마)라고 한다. 말은 인간에게 친숙한 동물로 도처에 말 무덤이 있고, 주인을 위하여 죽어간 의마총(義馬塚)도 많다. 옛사람들은 말이 인간과 같은 영혼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말의 피나 백마(白馬)는 귀신을 쫓는 벽사능력이 있다고 믿어 서낭당에 마상(馬像)이나 말 그림을 붙여놓고 마을의 무사(無事)를 비는 행사를 하기도 하였다.

한국인에게 말은 신성하고 상서로운 동물이다. 하늘의 사신, 제왕의 출현을 알리는 영물이었다. 설화, 문학 그리고 영화 속의 말을 우리민족이 말이 상서로운 시작을 알리는 동물이었다. 모든 이야기의 시초, 탄생에 말이 등장하였다. 기마민족의 후예 한민족은 건국신화와 설화에 말이 등장하였다.신라시조 박혁거세는 백마(白馬)가 낳은 알에서 탄생하였고, 백마는 신성(神聖), 서조(瑞兆) 그리고 위대함의 관념을 지녔다. 고구려의 천마총(天馬塚)엔 천마는 천상과 지상을 자유롭게 다니며,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대리인이어서, 쌍마(雙馬)는 힘차고 길(吉)한 동물이었다.

지구상 여러 동물 중 인간과 동물이 친밀한 교감을 통해 한 몸처럼 움직이는 동물은 말이 유일하다. 말과 교감하던 시대, 인간과 동물은 서로 소통하였고, 사람과 사람도 소통하였다. 자동차가 말을 대체하여 인간과 멀어졌고 인간소통능력도 저하했다. 교감하지 못하는 불통(不通)은 낙마(落馬)한다.그래서 승마, 말 타는 맛은“말이 필요 없다.”생명과 교감할 수 있는 스포츠로 통한다. 다리가 곧게 뻗어 있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말 등에 살짝 올라본다. 새파란 가을 하늘은 눈물마저 핑 돌 정도다.말과 한 몸이 돼 푸른 초원 위를 쉼 없이 달리다 보면 이마에 흐르는 땀줄기는 바람을 타고 허공을 날아간다. 그리고 거칠게 몰아쉬는 말의 숨소리에서 가을을 듣는다. 승마는 동물과 인간이 호흡을 맞추며 같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다. 승마는 격렬한 운동중의 으뜸이요, 전신운동이다. 하체가 강해지고, 유연한 허리, 체중을 줄일 수 있는 운동이다. 한겨울에도 땀이 흘러 겨울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예로부터 ‘사람을 나으면 한양으로 보내고 말(馬)은 제주로 보낸다.’는 속담이 있다. 고구려는 말에게 철투구를 씌웠고, 전쟁시 개마무사는 말다래를 말안장 옆에 달았고, 고려 때는 제주에 말을 먹여 기르는 목마장(牧馬場)을 건설하여 몽골의 말을 키웠다. 부여는 일본에 말을 전해줬다. 조선시대엔 말의 질병을 치료하는 마의(馬醫)를 두었다.

서울 성동구 마장동(馬場洞), 장안동(長安洞)의 장안평(長安坪)은 그 옛날 말이 뛰어놀던 넓은 평야지대, 조선시대 잠실 뚝섬의 군사 활동지역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겠다. 조선왕조실록엔 조선성종 16년(1485)에‘둑제(纛祭)를 둑도(纛島)에 서 지냈다’는 기록이 처음 나온다. 둑(纛)은 임금이 타는 가마나 군대의 대장 앞에 세우던 큰 깃발이었다. 둑은 둑기(纛旗)라고도 했다. 중요한 깃발이기 때문에 깃발 앞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둑제’란 ‘둑기’에 드리던 제사였다. 이런 행사를 집행하던-‘둑도’가 뚝섬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임금은 군사의 친열(親閱)을 받고, 군사훈련도 점검하고 호위군사를 데리고 사냥, 포술(砲術)도 친견했다‘. 둑섬’은‘전관’으로도 불렀는데 살곶이라 하였다. 전관(前官)은 살곶이의 한자어다. 지금 두무개에는 ‘살곶이 다리’가 남아있다.

문학과 영화에서 말은 신실하면서도 인간과 교감할 줄 아는 동물로 묘사된다. 1726년 출간된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서 걸리버가 마지막으로 여행했던 마인국(馬人國)은 작가가 꿈꾸던 이상세계로 묘사되었다. 1945년 조지오웰의 소설<동물농장>에서도 말복서는 정직하고 근면한 성품을 지녔지만, 돼지 스퀼러의 간계에 휘말려 최후를 맞는다. 1982년 영국 아동문학가 마이클 모퍼그가 소설 워호스(War Horse)를 출간했다‘. 워호스’는 참전군인이 모퍼그에게 들려준 실화다. <워호스>는 2011년 김민석 번역으로 우리나라에 출판되었다. 평범한 농장 말 조이의 눈에 비친 인간들의 끔직한 전쟁 그리고 한 소년과의 기적 같은 만남, 절망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2007년 연극이 됐고, 2011년 스필버그가 영화로 내놓았다. 미국 아마존독자 “한사람은 감동적이고 독특하고 교훈적인!”또 다른 독자는 “한쪽 손에는 휴지를 준비해라”고 독후감을 냈다.

레클리스(Reckless)는 6·25전쟁 영웅말의 이름이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하사관 계급이 수여된 한국산 경주마‘레클리스(Reckless)’의 동상<사진> 제막식이 2013년 7월 18일 미국 버지니아 주 판티코 해병대 박물관 야외공원에서 열렸다. 등에 탄약통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듯한 형상의 레클리스는 6·25전쟁 당시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수백차례의 탄약 공급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공로로 훈장을 받았던 전설적 군마였다. 2013년 7월 26일엔 레클리스의 동상과 기념관의 공식 헌정식을 개최했다.

레클리스는 서울 경마장에서 아침해(AhchimHai - Flame in the morning)라는 이름으로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트랙을 질주하던 경주마였다. 1952년 미해병 1사단 5연대 화기소대 에릭 페터슨 중위가 한 소년으로부터 당시 250달러를 주고 소유권을 넘겨받으면서 레클리스는 전쟁에 자동 개입되었다. 당시 미군은 산악지역이 많은 한국지형에서 탄약보급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타고난 용맹함으로 수십 킬로그램의 탄약을 짊어지고 45도 각도의 급경사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탄약을 공급하였다. 레클리스는 그 이름처럼 ‘무모하도록’용감했다. 철조망도 잘 넘었다. 이마엔 하얀 줄이 있었던 밤색 암말, 적탄이 날아오면 엎드릴 줄도 알았다. 안내병 없이 혼자 적탄을 뚫고 포탄을 져 나른 것만 쉰한차례였다.

미군은 레클리스를 미국으로 데려가 1959년 부사관 계급을 줬고, 1968년 숨을 거두자 군인 못지 않은 장례식을 치러 줬다. 미국민들은 전쟁을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 미국 네티즌이 해병 사이트에 댓글을 달았다“. 스필버그씨, 이제 영화‘레클리스’를 만들 차례요.”1997년 라이프 잡지는 레클리스를‘ 세계 100대 영웅’으로 꼽았다.

예부터 명마(名馬), 군마(軍馬) 이야기는 무수하게 많다. 소설<삼국지> 속에 여포(呂布)의 붉은털, 천리마는 하루도 쉬지 않고 천리를 달렸다. 위기에 처한 유비의 목숨을 구해낸 붉은점 적로(敵露), 적군 앞에 그림자도 남기지 않는다는 조조의 절영(浙影), 춘추전국시대 연나라 곽외의 천리마, 서양에서는 알렉산더 대왕이 왕자 시절 명마 부케팔로스의 순치 에피소드가 흥미롭고, 나폴레옹의 명마 마렝고(Marengo)는 아침운동 50마일(80km), 식후운동 80마일(129km)을 달렸으나 월터루 전투에서 패배하여 영국에 씨수말로 팔려 38세에 죽었다.

윤대녕의 아름다운 단편소설 <말발굽 소리를 듣는다>는 수시로 말발굽 소리를 듣는 백부와 아버지를 가진 남자의 목소리가 전하는 이야기다. 평생 달려야 하는 역마살 운명: 멈춘다면 그건 삶도 정지하는 것. 달리는 말에서 보니 주마간산(走馬看山): 한번 봐도 분명히 아니, 일목요연(一目瞭然), 한번 보고도 분명히 안다는 뜻이다. 말 위에서도 그릴 수 있다는 뜻이다.

유난히 ‘띠’타령 거센 갑오년 말띠생이 말시에 태어나면 그 팔자는 “탄도치마(坦道治馬)” “탄탄대로를 말 타고 달리는 팔자”라 한다나. 전북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 전국 8대 명당 중 하나로 꼽힌다. 말안장 모양 산세. 광산 김씨 사계 김장생 선조묘라. 말의 똥(마분·馬糞)이 들어있는 격언은 인생살이 방향타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중요한 일을 맡음을 조롱하는 말은 “말똥도 모르고 마의(馬醫) 노릇한다.”고생은 될지라도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다는 말에 이르면 “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못 먹을 것을 먹으려 하는 사람을 놀려줄 때는 “말 똥이 밥알 같으냐”한다.

< 이정균 이정균내과의원장 · 의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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