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보국’ 의지로 탄생한 116년 전통 국민소화제

활명수 개발 스토리

동화약품(회장 윤도준)은 116년째 같은 상호(동화)로 같은 제품(활명수)을 생산/판매하고 있는 국내 유일무이한 일업백년(一業百年) 기업이다.

동화약품의 역사는 활명수(活命水)의 역사와 맥락을 함께한다.

대한제국 원년인 1897년, 궁중 선전관 민병호 선생이 우리나라 최초의 양약인 ‘활명수’를 개발하고, 이를 대중화하기 위해 그의 아들 민강(동화약품 초대사장)과 함께 동화약방(現 동화약품)을 창업하면서 기업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활명수의 개발자인 민병호 선생은 궁중선전관으로 일하면서, 평소 의약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아 전의(典醫)들과 교류하면서 궁중비방을 습득했다. 궁중비방과 양약의 편리함과 이점을 더해 만들어진 활명수의 탄생은 민병호 선생의 동서양 의학에 대한 관심에 기반을 둔 것이다.

당시는 약이라고는 달여 먹는 탕약밖에 몰랐던 시기였다. 약을 구하기 힘들어 심지어는 급체, 토사곽란 등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민병호 선생이 활명수를 제일 먼저 개발한 것도 소화불량이 가장 흔하고, 백성들에게 큰 고통을 주는 병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에 소화불량이 많은 것은 특유의 식습관과 연관이 깊었다.

구한말의 선교사 에비슨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은 양의 식사를 매우 빨리 먹는 식습관으로 위장병이 많았다고 묘사했으며, 세계적인 여행가 비숍 역시 ‘한국인은 못먹는 것이 없는 잡식가’로 말했을 정도니 한국인이 소화불량, 위장병, 대장염 등의 소화기 질환으로 고생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소화불량에 효과가 있으면서도 복용이 간편한 활명수(活命水)는 그 이름처럼 ‘생명을 살리는 물’로 민간에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현호색, 창출, 진피, 후박 같은 전통 한약재에 아선약과 정향 등의 수입 약재를 배합한 활명수는 특유의 효능과 편리함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침술과 한약에만 의존하던 우리 의약계에 활명수는 새 바람을 일으켰다.

‘제약보국(製藥輔國)’이라는 숭고한 의지에서 개발되어 실제로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 활명수의 탄생은 대한민국 제약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제조회사의 설립을 통해 브랜드를 갖고 판매되어 대한민국 자본주의와 브랜드 역사에도 한 획을 그었다.
<동화약품 자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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