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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백병원 내과 항암병동 간호사 나은선, 신지숙

나는 항암병동 간호사

▲ 나은선, 신지숙
상계백병원 내과 항암병동 간호사
내과 병동에 지원을 하여 떨림과 설렘으로 첫 발을 내딛던 새내기 신규 간호사가 벌써 10년을 훌쩍 넘기고 30대 중반의 간호사가 되었다. 신규로 입사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내가 잘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과 ‘열심히 해보자. 할 수 있다’ 는 다짐을 하고 출근을 했던 추억이 뇌리를 스친다.

내과병동이면서 암 병동이라 그런지 여러 가지 질병과 암으로 입원한 환자들, 많은 검사,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등 정말 많은 임상경험을 했고, 그 경험이 있어 자기발전이 되었던 것 같다.

혈액종양내과 병동은 특성상 이제는 삶과 죽음이라는 단어가 더 가까이 와 닿게 느껴진다. 처음 사망 환자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지금은 일상의 업무처럼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때도 있다.

병원에서 근무를 하다보면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게 된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었는데 연세도 60세 초반의 중년 신사가 여느 때와 같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림프종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으러 오신분인데 첫 진단치고는 표정도 밝으시고 웃는 모습에, 언제나 혼자 오셔서 2박 3일 동안 조용히 항암치료를 받았고 조용한 성격 탓에 많은 대화를 나누기보다 오가며 마주치면 인사를 하며 지내던 분이었다. 일곱 번의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자연스레 친해지게 되었고 교사 생활을 하다 정년퇴임 하고 부인과 자녀들은 해외에 유학을 보냈다고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암 환자의 가장 안타까운 순간이 찾아오게 되었다.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되었고 그렇게 정정 하던 분이 혼자서 거동을 할 수 없게 되어 보호자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상황에 미국에 살던 부인이 오게 되면서 그런 상태를 처음 본 부인은 “우리 남편이 왜 이렇게 되었냐? 그동안 병원에서는 뭘 했느냐” 며 매시간, 순간마다 질문과 면담을 신청하며 또 한분의 관심 환자가 되었다. 보호자로서 그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혼자서 병원 다니며 항암치료 받을 때는 뭐하다가 이제 와서 그러나 하는 불만의 마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자 상태가 급속히 악화되어 중환자실에 가서 집중치료를 하느냐 아니면 병동에서 환자 보호자와 함께 남은 시간을 보내느냐의 결정의 순간이 왔고 보호자는 중환자실 치료를 거부하며 24시간 환자 곁에서 병간호를 하며 연명치료를 하기로 하였고 간호사들과 거의 함께 지내다 시피 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보호자는 간호사라는 호칭보다 이름을 부르며 언니라는 호칭이 더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이가 되었다. 회진 할 때면 교수님들에게 간호사들이 이렇게 고생 한다며 칭찬해주고, 난동 환자가 있으면 간호사 편이 되어 더 큰소리로 싸워주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 환자는 기적으로 상태가 나아져 10가지 넘게 달고 있던 주사제가 하나, 둘 씩 줄어들면서 걸어서 퇴원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외래를 다니며 항암치료 받고 있다고 가끔씩 소식을 전해 오고 있다.

병원 생활을 하며 가장 보람되었던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관심 보호자에서 가족과 같은 사이가 될 수 있는 곳이 이 곳, 항암 병동이 아닌가 싶다. 매번 반복되는 항암치료에 우리 간호사들이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것이, 내일도 웃으면서 출근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된다. 환자들이 병원에 들어 올 때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들어오고 퇴원 할 때는 웃으면서 갈 때 그때가 제일 보람을 느끼고, 환자들이 잊지 않고 외래 진료가 끝나고 병동에 와서 고맙다는 인사를 주고 갈 때가 우리 간호사들은 제일 보람을 느낀다.

언제나 변함없는 환자사랑으로 암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들의 주인의식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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