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못 박힌 겨울

박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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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못 박힌 겨울을 보았다
그 나무 아래를 지날 때
그 겨울은 나에게로 떨어졌고
나는 모자를 뒤집어쓰고 달렸다
첫 번째 외나무다리를 건너와
쫓아오던 사람들이 그 겨울을 밟고 지나갔고
나는 끝까지 비명을 참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외나무다리를 건넜다

첫 번째 집 앞에서 나는 기다렸다
그 겨울을 깔고 앉아
지나온 외나무다리를 생각했다
다리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들이
다리 위에 푸르게 빛나는 집을 짓고
다리를 건너는 사람을 집 속에 집어넣고
부수고 다시 짓고
부서진 집에서 푸른 뇌수액이 나와
살아남은 사람들의 집으로 흘러갔다

첫 번째 다리를 부수고 돌아왔을 때
사람들의 집이 무너지고
무너진 곳마다 외나무다리가 생겼다
두 번째 다리를 부수고 돌아온 사람들은
이슬 내린 거리에서 백 년 동안 잠을 자고
이른 새벽 죽은 사람들의 두개골을 안고
세 번째 다리를 부수러 떠났다
안개가 걷히면 외나무다리는 다시 생겼고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모자를 뒤집어 쓰고 다시 달린다
두 번째 집을 향해
첫 번째 다리와 두 번째 다리와
세 번째 다리를 건너
긴 비명 속을 끝까지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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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우: 부산의대졸업, 박강우 소아과의원 원장.
『현대시학』 등단(1998년).

춥다. 겨울이다. 봄, 여름, 가을 세 번의 계절을 건너 왔다. 더 길게 멀리 뒤돌아 보니 어느새 생애의 겨울이다. 한 매듭 한 매듭 어떠한 의도로 어떻게 지내왔는가? 머리 속에 기억으로만 또는 기호로만 남아 가끔 흐릿하거나 간혹 또렷하게 떠오를 뿐. 다시 건너 볼 수 없는 지나온 시간들이여, 이제는 오히려 공간이나 공간의 표식으로 박혀 있는 지나온 흔적들이여. 이 저녁 진료실을 나서면 가지로만 휑하게 서 있는 나무든지 아니면 베여 저기 드러누운 외나무 다리에 이정표처럼 박혀 있는 추위.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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