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손을 씻다

김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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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죽었다
심폐소생술을 그만두자
머리맡엔 이승의 평행선이 장식되고
서둘러 입술이 트도록 설명했다
형은 양손으로 뺨을 부비고
꿇앉은 형수는 내 가운을 뜯지만
딱-하는 소리로 인공호흡기의 전원을 내렸다

그래, 꿈도 없는 잠
피곤한 마음은 우울하거나 암울하지 않고
고통으로 몸부림치지도 두려워서 부들대지도 않지*

빈 병상…

영안실로 보내고
삼 주 동안 정들었던 자리만 중환자실
병상으로 다가가
앉기도 하고 갈색 매트리스에 누워도 보았다
나이 든 간호사는
단련된 나이에 그러냐고 달래지만
갈비뼈가 열 개나 부러져 아팠던 망자의 설움이 비좁은
가슴으로 들어와 삐끅하는 통증에
순간 가운을 여몄다

잘 가게
보내야겠네
나를 보내주어야겠네

*C. 로제티, 'Sleeping at last' 부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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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수: 한양대 의대 박사. 흉부외과. 한일병원 원장.
시와 사회 등단(1993).

‘딱-’ 하고 끝날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꿈도 없는 잠’을 꾸기 직전에.
제우스의 딸들이라고도 여겨지는 파테스(Fates, 영어의 fate)는 운명의 3여신(女神)이다. 클로토(Clotho, 영어 cloth)는 운명의 실을 잣고, 라케시스(Lachesis)는 운명의 향방을 정하고, 아트로포스(Atropos)는 검은 옷을 입고 가위로 가차없이 생명의 실을 끊어버리는 여신이다. 운명의 실은 아마도 ‘딱-’ 소리를 내며 끊겨질 지도 모른다.
퀴블러 로스(Kübler-Ross)가 제시한 죽음을 맞는 부정-분노-타협-우울-순응의 다섯 단계는 잘 알려져 있다. ‘죽음에는 인간이 출구로 쓰고 있는 수만 개의 문이 있다.’고 존 웹스터(John Webster)는 상정(想定) 한 바 있다. 그의 생각과 우연히 닿았는지 릴케(R.M. Rilke)는 다음과 같은 시구(詩句)를 남기고 있다. ‘오, 주여, 우리들 각자에게 알맞은 죽음을 주소서!’
이처럼 죽음에 관한 수 많은 가정과 토로가 이어지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죽음을 겪어 본 적은 없다. 몇 단계를 거쳐 도달하는 지, 정녕 문은 몇 개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오로지 분명한 것은 당장은 환자에서 사망자로 분류되어 영안실로 옮겨진다는 사실과 그 후에 가운 소매를 걷어 손을 씻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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