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박스 댄서- 오, 피그말리온

정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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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야.
밖으로 나가기 싫단 말이야.
춥고 어두운 거리에서 비 맞기보다는
여기 그냥 이대로 머물러 있겠어.

그래, 네 말대로
난 정말 자폐증인지도 몰라.
너와 함께 여기 혼자 있는 게
얼마나 편하고 좋은데.
널 만든 철과 전기에 감사하며.
나도 네 곁에서 자동 인형으로 남고 싶어.
스위치를 켜줄 테니 밤새도록

춤이나 더 추어 볼까,
내 사랑의 힘으로
네게 인간의 영혼이 입력될 때까지.

이런 편리한 자동화 사랑에 익숙해지면
삶은 얼마나 편하고 즐거운지 몰라.
질투심 많은 노인네들은
인간과 기계 사이의

저주받은 사랑이라 부르겠지만.
( 「뮤직박스 댄서- 오, 피그말리온」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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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태 (1949-2005): 부산의대, 내과의원 원장.

시문학(1984) ‘시와 사상’ 창간.

키엘케골의 고슴도치처럼 서로 닿지 않는 이기적이고 위선적이고 차가운. 독한 경쟁. 그 속에서 내 뜻대로 움직여주고 함께 해주는 철과 전기로 만든 장난감 기계인 뮤직박스 댄서를 사랑하게 되었다, 감정이 없는 무생물에 영혼을 넣으며 합일하려고 하는 자폐증적 심리의 한 소견이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조각가 '피그말리온(Pygmalion)'왕은 자신이 조각한 여인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여신(女神) '아프로디테(로마신화의 비너스)'는 그의 사랑에 감동하여 조각각상에 생명을 넣어 준다. 이처럼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하여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피그말리온 효과라 한다. 가장 알기 쉬운 예는 교사의 관심이 학생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요인이 된다는 교육심리학 현상이다. 사람과 무생물인 조각품 사이에 단절이 없어지고 둘 사이에 연속이 생겨난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 역사학자인 브루스 매즐리시(Bruce Mazlish)는 ‘네번째 불연속(The Fourth Discontinuity)’에서 4가지 불연속의 사라짐을 적고 있다. 인간과 우주의 불연속은 지동설로, 인간과 동물의 불연속은 다윈에 의해, 무의식과 의식의 불연속은 프로이드에 의해 연결되었고, 네 번째 불연속인 인간과 기계의 불연속 역시 이제는 사라지고 있다고 설파한다. 우리가 만든 기계는 이미 우리를 조종하고 지배할 정도로 전연 동떨어진 도구가 아니라 서로 소통하는 존재로 연속되어 지금 나는 전자진료차트를 띄우는 컴퓨터와 의학을 논하고 있다. 잔잔히 흘러나오는 음악의 사랑을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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